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한 두 시선 [안전한 사업장①]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한 두 시선 [안전한 사업장①]

노동계 "강한 처벌이 답" vs 경영계 "예방이 먼저"
재계 "법 허점·中企 대책 검토와 시범 운영 필요"

기사승인 2022-01-10 06:00:02
[안전한 사업장①]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한 두 시선
[안전한 사업장②] “중대재해 예방.왜 잘하고 있다고 말 못해”
[안전한 사업장③]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사진=임형택 기자

노동자가 업무상 입은 신체·정신적 피해를 산업재해(산재)라 한다. 산재는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주로 제조업 중심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빠른 공업화와 급변하는 노동환경으로 산재 발생이 줄지 않는다. 예방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 그러나 관련법은 사업주에 최소한 예방조치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달 27일 사업주 의무를 강화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편집자주>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씨.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고 김용균씨를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된다. 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법이 국회문턱을 넘고 시행령이 제정되고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법을 바라보는 노동계와 경영계 두 시선의 각도 차는 여전히 크다.

노동계는 애초 입법 취지와 달리 제정된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반쪽짜리 법, 법 제정 취지를 후퇴한 법으로 규탄하며 강한 처벌을 담은 법으로, 경영계는 경영책임자 지정,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에 사업주 노력 여부 등 처벌범위의 불명확 등 기업 경영 부담으로 핏대를 세우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 진짜 핵심 빠진 후퇴한 법...멈추지 않은 산재

지난해 8월 제정된 시행령은 △중대산업재해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확보의무 구체적 내용 △안전보건교육 수강 및 과태료 부과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 등이 담겼다. 하지만 '2인 1조 근무', '과로사 근절', '안전작업 위한 인력확보' 등 법 제정 핵심은 제외됐다고 노동계는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5인 미만 적용 제외, 50인 미만 적용 유예, 인과관계추정 조항 삭제 등으로 법 제정 취지를 후퇴시켰다며 비난했다.

법 시행이 코앞인데 산재 사망 사고는 줄지 않고 있는 현실도 노동계는 지적했다. 시행령은 원청 책임자에게 책임을 명확히 묻지 않고 있는 점에서 법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라고 꼬집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 처벌은 쉽지 않다는 의미다.

2020년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에 나선 노동자들.    쿠키뉴스 DB

현재 중대재해를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양형기준이 낮아 사업주에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이 꾸준했다. 지난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안법 양형기준을 높이긴 했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고 노동계 안팎은 지적한다. 이 때문에 산안법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대재해법 제정에 힘이 실렸는데 '차 포 뗀 누더기 법'이 됐다고 노동계는 주장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 논의가 한창인 2020년 대법원이 펴낸 사법연감(통계)에 따르면 당해년도 1심법원에 접수된 산안법 위반 건수는 818건이다. 이중 신체 자유를 뺏는 자유형 선고 건수는 9건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했고 집행유예는 109건으로 13.3%를 차지했다. 재산형인 벌금 부과는 482건(58.9%)으로 가장 많았다. 벌금에 대한 집행유예 건수도 1건이나 있었다. 선고유예는 12건이었고 무죄는 15건(1.83%)이었다. 

최근 발생한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전기 연결 작업을 하다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사고에서도 경영책임자인 한전 사장은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 않지만 산안법상으로는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노동계 일각은 보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일각은 사업주 처벌은 불가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산안법 규칙상 사업주를 처벌하려면 사업주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보통은 경영책임자가 안전관련 책임을 현장책임자에게 위임하고 있어 고의성 입증은 사실상 불가하다는 이유다.

이에 노동계는 노동자가 적어도 일하다 목숨은 잃지 않게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에 맞게 법 개정안 보완입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영계, 유례없는 강력한 기업 처벌 법...'예방에 초점 맞추라'

노동계와 정반대로 경영계는 “유례없는 기업 강제 법”이라며 “이대로면 억울한 경영자만 양산하는 꼴”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 “산업안전 처벌 수위가 가장 높은 국가는 한국 뿐 이고 선진국과 같이 예방중심의 산업안전정책 수립과 사업 추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12월 '산업안전 관련 사업주 처벌 국제 비교 및 시사점'을 통해 외국국가와 우리나라의 사업주 처벌 수위를 비교하면서 중대재해법으로 산재 감소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처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해 6월 안경덕 노동부장관을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한 보완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 설명에 의하면 외국의 경우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사망자 없는) 시 처벌수위는 △징역형을 두고 있는 국가들은 최대가 1년 △금전벌(벌금 또는 과태료)은 최대 3400만원이다. 한국(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보다 모두 낮았다. 또 △징역형 규정이 없거나(독일, 프랑스 등)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는 국가(미국, 독일)도 있었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수위는 △징역형(금고)은 3년 이하 △벌금은 대체로 1000만원 내외(영국, 프랑스 제외)로 우리나라보다 매우 낮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망사고 발생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산안법상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 진다. 

또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아닌 '형법'으로만 책임(업무상과실치사죄)을 묻고 있는 국가(프랑스, 일본, 오스트리아)도 있었다고 경총은 소개했다. 

경총은 반복적인 사망사고를 일으킨 사업주에 가중처벌을 두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뿐이라고도 소개했다. 이 경우도 미국은 가중 처벌수위가 징역형 1년 이하 또는 벌금 2만불이하인 반면 우리나라는 10년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았다고 했다.

경총은 "대부분 선진국은 처벌보다 예방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며 "실제 영국과 싱가포르는 산업안전정책을 기업의 자율관리 방식으로 전환 후 사고사망자 발생률을 낮추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더라도 산재사망자 감소효과는 없거나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으로 선량한 관리의무자로 안전한 사업장에 노력하는 사업주를 억울하게 처벌하는 사례가 발생할 것도 우려했다. 또 대기업보다 재정적 규모가 적은 중소기업은 법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경영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중재재해법 대응 매뉴얼을 발간하면서 “중소기업 대부분은 오너가 곧 대표이사이자 경영책임자”라면서 “사고 발생 시 무거운 처벌은 물론 경영 중단이나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 관련법 제정에 부담과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해 후진적인 근로문화가 선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희망적이나,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사각지대는 없는지,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할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지 등 법 시행 이전에 종합적인 검토와 시범 운영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전한 사업장②]에서 계속.

윤은식 기자 eunsik80@kukinews.com

윤은식 기자
eunsik8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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