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프로그램 왜 (안) 보세요 [나는 솔로지옥③]

데이팅 프로그램 왜 (안) 보세요 [나는 솔로지옥③]

기사승인 2022-01-16 07:00:01
넷플릭스 ‘솔로지옥’ 스틸. 넷플릭스

지난해엔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가 인기였다. 그 전 해엔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3’가 난리였다. 요즘엔 넷플릭스 ‘솔로지옥’을 모르면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가장 내밀한 감정 교환은 어쩌다 흥행 불패의 히트 상품이 됐을까. SBS ‘짝’으로 데이팅 프로그램에 입문해 ‘스트레인저’와 ‘나는 솔로’, ‘환승연애’와 ‘솔로지옥’을 두루 섭렵한 대중문화팀 이은호 기자와 마지막으로 본 연애 프로그램이 MBC ‘우리 결혼했어요’인 대중문화팀 김예슬 기자가 각자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와 보지 않는 이유를 털어놨다.


해로워도 중독되는 불량식품의 맛

인정한다. 데이팅 프로그램은 흠결이 많은 예능 형식이다. 첫째, 한 편도 빠짐없이 이성애자만을 다룬다. 둘째, ‘여성적’ ‘남성적’인 외모·말투·행동을 끊임없이 주입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셋째, 출연자의 나이·직업·외모를 항목화해 품평하도록 유발한다. 넷째, 대부분 일반인인 출연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다섯째, 대부분 일반인인 출연자를 제대로 검증하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왜 데이팅 프로그램을 챙겨보느냐고 묻는다면 ‘재밌어서’라고 답할 수밖에. 무릇 연애란 꽁꽁 숨기고 살던 나의 결핍을 가장 솔직하게, 때론 애처롭게, 자주 지질하게 드러내는 일. 데이팅 프로그램의 진짜 재미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간접 경험하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사랑을 쟁취하려는 인간이 얼마나 구차할 수 있는지, 혹은 비겁할 수 있는지, 혹은 용감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데 있다. 보현에게 적극 구애하는 민재(티빙 ‘환승연애’)를 보면 마치 내가 연애를 시작하는 양 설레지만, 그보다는 제주도에서 마음을 바꾼 호민이 보현과의 이별을 막아보려 애쓰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을 보태는 일이 더 재밌다. 넷플릭스 ‘솔로지옥’ 속 남녀 출연자들이 호텔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주고받는 말들은 물론 달콤하지만, 두 번째 데이트에서 지연을 택한 진택의 본심은 무엇인지, 지아의 마음은 현중·시훈·현승 중 누구에게 있는지, 지연을 향한 세훈의 끈질긴 구애는 과연 응답받을 수 있을지를 유추하는 일이 훨씬 흥미진진하다.

인정하자. 동화 같은 공간과 ‘뽀샤시’ 필터를 입힌 듯한 화면은 눈속임일 뿐. 데이팅 프로그램은 다른 이의 사생활을 훔쳐보며 누가 더 아까운 상대인지를 따져보거나,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품평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현실에서 고이 봉인해뒀던 욕망을 은밀하게 긁어대는 이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를, 응원할 순 없지만 외면하기도 어렵다.

‘솔로지옥’ 스틸. 넷플릭스

내 친구의 연애랑 뭐가 달라

인정한다. 데이팅 프로그램은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핫’한 출연자들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구애하고 실시간으로 감정이 변화한다. 저러면 안 된다는 훈수도 두고 싶고,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 거라고 우쭐대고도 싶다. 저들의 감정선을 훤히 읽어내며 묘한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감정 소모 없이 다른 사람들의 연애사를 지켜보는 건 나름 재미있다. 연애 고수라도 된 듯 판을 들여다보며 통찰력을 발휘하는 스스로가 뿌듯해질 수도 있겠다. 새로운 얼굴들을 보는 것도 신선하게 다가올 만하다. 서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쟁취하려는 신경전과 견제도 관찰자 입장에선 꽤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런데도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이유는 ‘관심이 가지 않아서’다. 아무리 화제가 돼도 일반인의 연애사를 굳이 콘텐츠로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친구의 연애 고민을 들어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고민을 가장한 푸념과 자랑이 넘실대고, 진심으로 조언해도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친구를 보며 답답해한 적도 있을 터다. 우리는 이미 남의 연애사를 닳고 닳을 정도로 듣고 봐왔다. 일반인들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나 친구들의 연애사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앞선다. 어쩌다 봐도 중도 하차할 지점이 여럿 생긴다. 열렬히 구애하면서도 뒤에선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찜찜하다. 그를 비참하게 담아내는 연출이 곁들여지면 인류애가 사라지는 기분마저 든다. 남의 연애에 과몰입하는 건 드라마로 족하다. 완성도 있게, 극적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인정하자. 천년의 사랑이라도 나눌 듯한 저들도 결국은 우리 주변의 커플들과 똑같다. TV에 나온 선남선녀의 연애라 해서 다를 것도 없다. 결국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 연애사에 불과하다. 과몰입하려 해도 답답함이 앞서는 남의 연애. 다들 본다는 프로그램이어도 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은호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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