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사퇴 후 행보에 전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단순 ‘개인의 면피’가 될지 ‘기업의 책임’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17일 서울 용산 HDC현대산업개발 사옥에서 “광주에서 연이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를 수습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그룹차원에서 모든 노력과 지원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다만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지분 40%를 보유한 그룹 지주사 HDC의 지분 33.68%를 들고 있다. HDC 그룹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경영 일선에서만 물러나는 ‘2선 후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사퇴함으로써 책무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할 것”이라며 “향후 어떤 역할을 할지는 구체적으로 심사숙고해서 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책무를 회피한다 안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일 먼저 국민의 신뢰를 찾는 게 이 문제의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사고 발생 후 1주일이나 지나서 사과한 점에 대해서는 “실종자 구조작업이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사고 지점이 지상 100m 이상이기 때문에 2차 사고가 우려되는 등 구조가 지연돼 일주일정도 늦게 사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정 회장은 발표를 마친 뒤 바로 광주시로 내려갔다. 이후 정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단순히 사퇴를 함으로써 사고수습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회장직에서 물러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해 임하실 생각”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족협의회 측도 같은 날 사고현장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안정호 대표는 “정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고 물러날게 아니라 실질적인 사태 해결을 총괄 책임지고 응당한 처벌을 받으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개 몇 번 숙이는 사과는 가식과 쇼에 불과하다”며 “물러나는 것은 자유지만, 책임을 지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면피”라고 말했다. 이어 “사퇴 뒤 다른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어디선가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며 물러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현대산업개발 측에서 가족들에 대한 생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예기치 못한 수색 장기화로 인해 대부분의 가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3명이 다치고 6명의 현장 근로자가 실종됐다. 실종자 중 1명은 지난 14일 지하 1층에서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현재 남은 5명을 찾기 위한 수색이 진행 중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에도 광주에서 안전사고를 냈다.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