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회장은 사과문을 써보긴 했을까 [기자수첩]

최정우 회장은 사과문을 써보긴 했을까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2-01-21 15:11:50
진정성을 담은 사과는 잘못된 행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떤 대책을 내놓지를 밝히는 것이 순서다.

‘깊은 애도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든가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는 식의 유감 표현으로 책임을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사고 발생으로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하는 사과는 시쳇말로 영혼 없는 무성의한 사과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과를 담은 사과문은 진정성을 온전히 담아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쭙잖은 사과를 할 바에 안하느니만도 못하다.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출근한 지 20일도 안 된 하청업체 노동자가 움직이는 설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까지 포스코에서 최근 3년간 발생한 노동자 사망자 수는 8명에 달한다.  

사고 발생 직후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유족에 애도를 표하고 신속한 사고 수습, 재발방지 및 보상 등 후속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 사과문은 앞서 지난해 11월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 때 발표한 사과문과 몇 군데 문장과 단어만 다를 뿐 똑같았다. 진정으로 하는 사과가 아니라 이전에 내놓은 ‘언론용 사과문’에 내용만 조금 바꿔 사과 시늉만 낸 것 같은 강한 의심이 든다.

최 회장 사과의 진정성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2월에도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최 회장은 뒤늦게 사고 현장을 찾아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했다.

이후 최 회장은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출석해 재발방지와 대책 등 입장을 밝히기로 했으나 당시 허리 등 지병을 이유로 돌연 청문회 불참을 통보했다. 하지만 국회환경노동위원회는 최 회장의 불출석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예정대로 최 회장은 국회에 출석했다.

당시 국회에 출석한 최 회장은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유족분들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특히 당시 국회의원들이 “허리 아픈 것도 불편한데 롤러에 압착돼 죽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유가족과 산재로 사망한 억울한 노동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재착 고개를 숙였다. 당시 모 의원은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그게 회장님 인성”이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당시의 지적처럼 최 회장 마음속에는 노동자 사망 따위는 애초 안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노동자 사망에 일단 부글부글 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용 사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를 대하는 최 회장의 태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나친 것일까?

사과문을 최 회장이 직접 작성했는지 다른 직원 누군가 작성했는지 모를일이다. 다만 3개월 전 노동자 사망사고 당시 사과문을 조금 고쳐 재활용했다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에게 대한 도리가 아니라 여겨진다. 또 다른 생각은 과연 최정우 회장은 사과문을 써보기는 했을까로 이어진다.

사과문 내용도 다소 잘못됐다. 오롯이 숨진 노동자에 대한 애도와 그 유가족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담겼어야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지역사회를 언급했다. A4용지 반쪽 분량도 되지 않는 짤막한 사과문에 피해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글을 담기에도 부족한 데 말이다.

진심어린 사과는 하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성립된다. 다시 한번 숨진 노동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것인지 포스코와 최정우 회장에게 묻고 싶다.
 
최정우 회장이 지난해 11월 25일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 사과문과 이달 20일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 사과문 비교표.

윤은식 기자 eunsik8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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