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의 성취와 한계 [정치 풍자 예능②]

‘SNL 코리아’의 성취와 한계 [정치 풍자 예능②]

기사승인 2022-01-22 06:00:16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 ‘콜드 오프닝’ 코너. 유튜브 캡처.

낡은 미장원으로 두 남자가 들어선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남자가 분홍 방석이 깔린 의자를 보고 멈칫한다. 내내 머리를 도리질하던 또 다른 남자, 상대를 대신해 분홍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무슨 트라우마가 있으신가. 이발소에 무슨 임산부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껄껄껄!”

지난 15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 14회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최근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일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막을 올렸다. 배우 권혁수가 이 후보로 분했고, 배우 김민교는 내내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흉내 냈다. ‘SNL 코리아’ 측은 지난달 25일 시즌2를 열며 주요 대선 후보를 패러디한 콩트 ‘콜드 오프닝’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시즌2 첫 회 ‘콜드 오프닝’ 하이라이트 영상은 170만 뷰를 넘겼다.

윤 후보 부부를 패러디한 주현영(왼쪽), 김민교. 유튜브 캡처.

후보 가족도 풍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윤 후보 아내 김건희씨의 애교머리를 따라 한 배우 주현영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남편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무뚝뚝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김씨가 허위 이력 의혹에 사과하며 했던 말을 패러디한 대사다. 최근엔 배우 정상훈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똑 닮은 모습으로 이 코너에 등장했다. “고객님들 덕분에 저희 이발소 평점이 마의 15점을 넘겼습니다.” 안 후보가 이달 들어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을 15% 안팎까지 높인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계 상황을 콩트로 재구성한다는 점이 2012년 방영된 tvN ‘SNL코리아’ 속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와 유사하지만, 그때만큼 날카롭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의도 텔레토비’는 정치 현안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입장과 태도를 짚어내 웃음 코드로 만드는, 수준 높은 풍자를 보여줬다”면서 “반면 ‘콜드 오프닝’은 정치인 성대모사를 선보이는 정도다. 조금 더 신랄하게 접근하면 좋겠다”고 봤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이정희 당시 대선 후보를 본 뜬 캐릭터를 내세워 이들의 정책과 긴장 관계를 묘사해 호응을 얻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이후 폐지됐다.

주현영(왼쪽)을 만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유튜브 캡처.

‘주 기자가 간다’ 코너는 형식면에서 새롭다. 정치인을 초대해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던져서다. 정 평론가는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을 돕는 듯 보일 수 있는 형식이지만, 대중이 궁금해 하는 영역을 찔러줘 통쾌함을 안긴다”고 평가했다. 인턴기자로 분한 주현영은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선거에서 붙으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이도 어리고 행동도 어린 후보 VS 하는 일 없는데 지지율은 높은 후보”라고 묻는다. 각각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 후보를 겨냥한 보기다. 같은 당 후보를 감싸려는 눈물겨운 횡설수설은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이 후보는 휴가 때 보고 싶은 영화로 ‘아수라’와 ‘말죽거리 잔혹사’를 고르라는 요청에 진땀을 뺐다. ‘아수라’는 이 후보의 대장동 의혹과 맞물려 입소문 탔고,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이 후보의 여배우 스캔들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이 출연했다. 

다만 “웃음을 유발하려는 엉뚱한 질문은 ‘주 기자가 간다’의 한계”(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로 꼽힌다.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미모 월드컵을 진행해볼까 합니다.” 주현영의 이런 제안에 나 전 의원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 여성 정치인의 외모 순위를 매겼다. 이준석 대표는 “비트코인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냐”고 질문을 받았다. 김 평론가는 “(인턴기자가 정치인을 인터뷰하는) 상황 자체는 신선하고 도발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정치 풍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정책이나 공약은 살피지 않고 정치인 신상만 파고든다”고 지적했다.

정치판 사건사고를 그대로 재현(콜드 오프닝)하거나 돌발 질문으로 정치인을 골리는 것(주 기자가 간다)은 당장에 재밌고 시원할 순 있어도 통찰을 주지는 못한다. TV 코미디 방송이 전멸에 가까워진 지금, 좋든 싫든 ‘SNL 코리아’는 정치 풍자 코미디를 구사하는 유일한 쇼로서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좋은 풍자는 정책과 공약 등 공적 영역도 다룰 줄 알아야”(김 평론가) 하며, “정치 풍자의 성취는 보는 사람이 얼마나 통쾌하다고 느끼는가에서 나온다”(정 평론가)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풍자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한 풍자쇼’로 풍자의 대상이 될 것인가. ‘SNL 코리아’의 앞날이 궁금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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