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주진우 감독이 촛불을 기억하는 방법 [쿠키인터뷰]

김의성·주진우 감독이 촛불을 기억하는 방법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2-10 06:16:01
김의성(좌), 주진우 감독. (유)주기자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촛불로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 5년 전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 시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진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다. 촛불이 흐려지고 약해진 걸 안타까워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촛불의 흔적을 영화에 새기기로 했다.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할 사람을 수소문했다. 결국 찾지 못해 직접 나섰다. 김의성, 주진우 감독이 제작하고 연출해 1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나의 촛불’ 이야기다.

지난달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의성, 주진우 감독은 “정말 중요한 역사인데 사라지는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고작 5년이었다. 끊임없이 역동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의 변화와 몇 번의 선거는 촛불에 관한 기억을 풍화시켰다.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의 일보다 눈앞의 일에 몰두했다. 두 감독은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밝혀진 지 2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5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가 이뤄낸 것에 대한 자부심이 훼손되거나 흐려지는 것이 안타까웠죠. 촛불 시위 이후 2년도 안 지났을 때부터 사람들 마음에서 촛불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어요. 광화문에서 태극기 부대가 문재인 대통령 탄핵하라는 촛불을 들기도 했고요. 제겐 성스러운 촛불이 오염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사건이고 어마어마한 일이고 역사적 성취인데 이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김의성)

‘나의 촛불’은 3만 명에서 시작해 1600만 명까지 어떻게 촛불이 밝혀졌는지 처음부터 들여다본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지나는 과정을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단순히 재연하고 기록하는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당시 여의도에서 벌어진 정치 상황에 집중했다. 김의성 감독은 “한쪽에 여의도를, 한쪽에 광화문 시민들을 세워서 시간 순으로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나의 촛불’ 현장 스틸컷

“정치인들 중엔 ‘탄핵의 주인공은 나였어’, ‘내가 주인공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시민이었고 정치인과 다른 사람들은 조역과 엑스트라 역할을 잘한 거죠.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자긴 카메오라고 해서 제가 엑스트라였다고 정확하게 짚어줬습니다.” (주진우)

주진우 감독은 인터뷰 도중 “앞으로 영화는 절대 안 할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기자로서 주간지에 기사를 쓰고 책을 쓰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건 다른 일이었다. 매번 고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김의성 감독도 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하는 것과 달리 “돈을 넣어가면서 일하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영화는 다른 세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 쳐다보지 않는 걸로 결심했죠. 영화계 종사자들에 대한 존중이 생겼어요. 영화를 만드는 류승완 감독이 가까운 친구인데, 항상 무시하고 장난치고 그랬거든요. 이렇게 하나의 세상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에 대해 경외감이 생겼어요. 영화계에 종사하는 스태프들도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창의적인 일을 사람들은 더 존중받아야 하고, 좋은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주진우)

‘나의 촛불’엔 다양한 인물이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한다.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부터 박근혜, 최서원 게이트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그리고 유시민 작가, 손석희 JTBC 총괄사장,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인터뷰 섭외에 공을 들였다. 두 감독은 친박 성향 의원들이 출연하지 않는 사실을 아쉬워하며, SNS를 통해 섭외한 시민들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김의성(좌), 주진우 감독. (유)주기자

“시민들 인터뷰가 제 마음을 흔들어놨어요. 영화에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는 나이의 젊은 여성이 나와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컸을 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다시 아이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올 거라고 하죠. 많이 울컥했어요.” (김의성)
“그 친구가 세월호 피해 학생과 같은 학년이었어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세월호 참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마음 아팠어요. 시민들 인터뷰가 하나하나 주옥같아요. 시민은 위대했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습니다.” (주진우)

대선 한 달 전에 영화를 개봉할 생각은 아니었다. 2년 전 개봉을 준비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봉은 거듭 연기했다. 덕분에 영화를 찍을 당시와 정치 상황이 많이 변했다. 두 감독은 그것마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의 촛불’을 볼 때마다 다른 걸 느끼게 돼요. 지금 관객들을 만나면 각자 갖고 있는 촛불의 의미와 진실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게 되지 않을까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촛불은 제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아요.” (김의성)
“제작 시점과 개봉 시점이 2년 차이가 나요. 출연한 정치인들도 2년 사이에 변화를 겪은 분도 많이 계세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5년 전 촛불 시위와 탄핵의 기억을 3년 전 인터뷰를 통해 지금 시점에 보는 것도 어떤 면에선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여러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진우)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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