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돼지 추격전 끝에 마주친 것 ‘피그’ [쿡리뷰]

평화로운 돼지 추격전 끝에 마주친 것 ‘피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2-16 06:31:02
영화 ‘피그’ 포스터

질문이 계속 바뀐다. 처음엔 잃어버린 돼지의 행방을 묻는다. 그러다 남자의 정체를 묻고, 곧 그의 과거를 묻는다. 나중엔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중요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파고든다. 돼지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에 수많은 질문들이 촘촘히 숨어있다. 마지막 질문에 이르면 영화의 진짜 메시지가 드러난다.

영화 ‘피그’(감독 마이클 사노스키)는 세상을 등지고 숲속에서 트러플을 찾는 돼지와 살던 롭(니콜라스 케이지)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새벽 돼지를 훔쳐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롭은 푸드 바이어 아미르(알렉스 울프)의 도움을 받아 15년 만에 포틀랜드로 돌아간다. 아미르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롭을 아는 것에 놀란다. 롭의 정체가 밝혀지며 둘의 관계는 이전과 조금 달라진다.

언뜻 돼지를 훔쳐간 빌런을 찾아가 복수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정작 영화는 92분 러닝타임 내내 평화롭다. 롭은 소중한 돼지를 잃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폭력으로 분출하지 않는다.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길을 하나씩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미스터리들이 하나 둘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피그’ 스틸컷

단순한 구조 속에 독특한 전개 방식을 숨겨둔 영화다. 돼지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은 여러 가지로 외면을 바꾼다. 아미르 입장에선 롭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관객 입장에선 영화의 진짜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낯설지만, 흥미를 일으키는 미스터리 구조라 자꾸만 다음 내용이 궁금해진다. 롭은 영화에서 단 한 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속마음을 드러낸 장면은 영화의 중간쯤 배치되어 있다. 그 순간은 마치 롭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자신의 과거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롭은 다시 입을 닫는다. 롭의 입장에선 스스로의 과거를 만나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기도 하다.

‘피그’는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트러플 채집꾼들이 귀중한 돼지와 개들을 훔치려는 경쟁자들을 막기 위해 밤마다 총을 들고 현관문 앞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숲속에서 혼자 돼지를 지키는 노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때 더 이상 연기하지 말자는 생각까지 하며 슬럼프를 겪은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롭을 연기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피그’는 지난해 전미 비평가위원회(NBR) 최우수 데뷔 작품상과 라스베가스 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시카고 인디 비평가협회 각본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31관왕을 차지했다. 니콜라스 케이지도 연기상만 13개를 받았다.

오는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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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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