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여고추리반2’에 딱 한 가지 부족한 것

완벽한 ‘여고추리반2’에 딱 한 가지 부족한 것

기사승인 2022-02-19 07:00:02
티빙 ‘여고추리반2’ 포스터. 티빙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2’는 여러모로 잘 만든 프로그램이다. 추리와 예능을 결합한 형식이 신선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다섯 여성이 동갑내기 고교생으로 새롭게 관계 맺으며 보여주는 ‘티키타카’가 재미있다. 시즌2에선 출연자 각각의 캐릭터가 더욱 선명해지고 관계도 돈독해져 웃음 타율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여고추리반2’에도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경계하는 태도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
 
‘여고추리반’엔 매 시즌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시즌2는 사이코패스 고등학생 선우경 이야기다. 그는 구영선으로 이름을 바꿔 학생들을 조종하고 거듭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학생들 모두를 위험에 몰아넣지만, 추리반이 활약을 펼쳐 이를 막는다.

‘여고추리반2’는 가스라이팅(심리 지배), 사이버불링(사이버 공간 내 집단 괴롭힘) 등 현실과 밀접한 소재를 활용해 흡인력을 높인다. 문제는 가상 세계가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는 데 있다. 선우경이 학교 행정실 직원에게 무고를 저지른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학생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요량으로 행정실 직원이 화장실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했다고 꾸며냈다. 화장실에 카메라가 설치됐다고 거짓 제보를 한 뒤, 해당 직원이 화장실을 둘러보는 동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해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학생들은 학교와 직원을 향한 반감으로 똘똘 뭉쳤다. 직원을 적발한 선우경은 사이버 세상에서 영웅이 됐다.

‘여고추리반2’ 방송 캡처

현실에서 교내 불법촬영은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 모두가 느끼는 실체적 위협이다. ‘여고추리반2’ 마지막 회가 방영된 18일 경기 안양시 한 초등학교 교장이 여교사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촬영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애초 검찰은 징역 9년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교육자로서 성실히 근무해온 점을 참작한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지난 10일에는 자신이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여학생과 여직원을 700여 차례에 걸쳐 불법 촬영한 전직 교사가 실형 선고를 받는 일도 있었다. 성폭력 무고는 또 어떤가.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무고 비율이 높다고 여겨지지만, 실제 성폭력 피의자 대비 성폭력 무고 피의자의 비율은 1% 아래로 매우 낮다. 요컨대 ‘여고추리반2’는 불법 촬영과 성폭력 무고에 관한 현실을 정반대로 보여준다. 방송에서 불법 촬영은 그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몰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미디어에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가상과 현실의 상호 작용을 항상 의식하는 건 중요하다. 여자고등학교 화장실에 설치된 ‘몰카’가 공공의 적을 무고하기 위해 꾸며진 도구였다는 설정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하는 여성들, 혹은 무고 혐의로 몰려 2차 피해를 입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모욕감을 주진 않을지 경계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고추리반2’를 연출한 정종연 PD는 2019년 tvN ‘대탈출2’에서 정신병원을 무서운 장소로, 정실질환 환자를 기괴한 모습으로 표현해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상의 세계라도 누군가 당사자성을 이입할 여지가 존재하면, 그곳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여고추리반’이 시즌3로 돌아온다면, 그 세계는 더욱 사려 깊게 설계된 곳이길 바란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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