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혐오에 끔찍한 공포로 답하다 ‘안테벨룸’ [쿡리뷰]

지독한 혐오에 끔찍한 공포로 답하다 ‘안테벨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2-24 06:00:14
영화 ‘안테벨룸’ 포스터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영화 ‘안테벨룸’(감독 제라드 부시, 크리스토퍼 렌즈)은 이 질문에 대한 훌륭한 모범답안이다. 한 순간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이고, 인종차별에 관한 한 줄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는 의미 있는 영화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겟 아웃’과 ‘어스’가 준 충격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이 정도면 영화를 보고 놀라지 않기가 더 어렵다.

‘안테벨룸’은 미국 남북 전쟁 이전 시대인 안테벨룸 시대에 목화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이든(자넬 모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료들과 탈출을 도모했다가 실패한 이든에게 혹독한 벌이 돌아온다. 새로운 흑인 노예들이 도착하지만 이든은 침묵을 지킨다. 언젠가 다가올 시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침대에서 잠든 이든은 성공한 작가 겸 박사이자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끄는 베로니카(자넬 모네)로 깨어난다. 출장을 떠나 강연을 마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든은 갑자기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미스터리 스릴러와 공포를 넘나든다. 미스터리는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다. 이야기를 끌고가는 전체 맥락과 인물의 태도는 숨김없이 표현된다.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머릿속에 남은 궁금증이 끝까지 집중해서 다음 이야기를 보게 한다. 공포는 한 순간에 거대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귀신이나 연쇄살인마에게 쫓기는 공포에 비할 데가 아니다. 영화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게임 대신, 관객이 자발적으로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영리하면서도 지독하지만, 이 같은 구성을 설계한 이유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영화 ‘안테벨룸’ 스틸컷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이야기의 재미는 메시지의 의미 덕분에 힘을 받는다. ‘겟 아웃’과 ‘어스’가 그랬듯, 흑인들이 겪는 현재의 인종차별과 여성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대사와 이야기로 직접 전달하는 대신, 형식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전하려는 의도를 이 영화보다 더 잘 전달하는 방법을 상상하기 힘들다.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힘든 동시에 통쾌한 순간이 주는 쾌감도 대단하다. 대사에도 나오듯, 언제나처럼 남자들이 일으킨 문제를 여자가 해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이해할 단서가 곳곳에 깔려 있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하기 힘든 비밀이 후반부에 한 번에 해결된다. 일부러 속이진 않는다. 분명 조각들을 꼼꼼하게 배치했고, 남김없이 수거한다. 다시 보면 더 잘 이해될 영화다. 특히 카메라 앵글의 위치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 영화가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지우는지 유심히 지켜보면 다양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문라이트’(감독 배리 젠킨스)와 ‘히든 피겨스’(감독 데오도르 멜피)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 자넬 모네의 연기가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한다. 전 세계 17개국에서 이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제라드 부시 감독이 어느 날 꾼 끔찍하고 현실적인 꿈을 크리스토퍼 렌즈와 함께 시나리오로 완성해 제작된 영화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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