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축배를, 뮤지컬 ‘프리다’

고통 앞에서 축배를, 뮤지컬 ‘프리다’

기사승인 2022-03-03 18:31:37
뮤지컬 ‘프리다’에서 프리다 칼로 역을 맡은 배우 김소향. EMK뮤지컬컴퍼니

멕시코의 화가이자 문화운동가였던 프리다 칼로는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6세 때 찾아온 소아마비는 그의 오른 다리를 좀먹었고, 18세엔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서졌다. 반쪽이라 믿었던 남편 디에고의 거듭된 외도와 세 차례의 유산,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건강…. 그러나 칼로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의 끝자락에 남긴 일기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썼다고 한다.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프리다’는 칼로의 이런 태도를 ‘비바 라 디바’(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라는 구절로 압축해 보여준다. 칼로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쇼를 열어 관객에게 자신의 여정을 설명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현실을 벗어난 환상적인 연출이 일품이다. 배우 최정원과 김소향이 프리다 칼로가 돼 무대에 오르고, 전수미·리사(레플레하), 임정희·정영아(데스티노), 최서연·허혜진·황우림(메모리아) 등 걸출한 여자 배우들이 뒤를 채운다.

‘프리다’를 만든 추정화 극작가 겸 연출가는 칼로를 “고통이 따라와도 한 잔 샴페인을 따른 인물”로 묘사한다. 거듭된 고난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한바탕 축제처럼 즐겼다는 의미에서다. 3일 프레스콜에서 만난 추 연출가는 “칼로는 소아마비, 교통사고, 디에고의 외도 등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 인생을 힘들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제작 단계부터 작품에 참여했던 김소향은 “칼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깊은 고통을 겪었지만, 늘 유쾌하게 해소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라며 “언니(추 연출가)도 이 작품을 유쾌하게 풀고 싶다고 하셨다”고 부연했다.

‘프리다’ 공연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그래서일까. 수없이 외도를 저질러 프리다를 괴롭게 한 디에고도 ‘프리다’에선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추 연출가는 디에고를 직접 소환하는 대신, 쇼 코러스 중 한 명인 레플레하가 그를 연기하도록 했다. 포르투갈어로 ‘반사’를 뜻하는 레플레하는 실제 디에고가 아니라 프리다의 눈에 비친 디에고를 보여준다. 또 다른 코러스인 데스티노는 칼로가 교통사고 직후 봤다는 죽음을, 메모리아는 평행세계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칼로를 형상화한 캐릭터다. 추 연출가는 “이런 환상적인 존재를 활용하면 칼로의 파란만장한 삶을 작은 극장에서도 펼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수현 음악감독은 칼로의 강인함을 화려하고 거대한 음악으로 되살렸다. 이 작품 메인 넘버인 ‘코르셋’은 교통사고를 당한 칼로가 코르셋을 갑옷처럼 두르고 목발을 검처럼 들며 다시 일어서는 결기를 보여준다. “새로워진, 완전히 달라진 나”를 포효하는 칼로는 장군처럼 위풍당당하다. 디에고가 칼로에게 구애하는 장면을 표현한 ‘허밍버드’ 무대에선 디에고로 분한 전수미가 탭댄스를 추고, 리사는 재즈 스킷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볼거리가 많다. 허 감독은 “이야기가 고통스러워도 음악은 신파적이지 않기를 바랐다”며 “강렬한 리듬과 넓은 음역대를 써서 칼로가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관객이 느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자기 생을 지켜낸 칼로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용기와 감동을 준다. 최정원은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연민과 동정으로 시작했는데, 칼로를 알면 알수록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대에서 칼로로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소향은 “‘당신이 느끼는 고통이 아무리 깊어도, 그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며 “관객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인생은 만세야!’라고 느끼시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공연은 오는 5월29일까지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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