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고양이의 공존을 위한 고민, ‘고양이들의 아파트’ [쿡리뷰]

나와 고양이의 공존을 위한 고민, ‘고양이들의 아파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3-16 06:00:21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포스터. 엣나인필름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대단지. 이삿짐을 나르는 손길이 곳곳에서 분주하다. 주민들이 빠진 아파트는 조금씩 헐린다. 굴착기가 굉음을 내고, 지게차는 위협적으로 땅을 울린다. 폐허가 되어가는 이곳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이는 다름 아닌 고양이들. 단지 안에 살던 길고양이들은 졸지에 피난민이 된 제 신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감독 정재은)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길고양이들의 이주 프로젝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1980년 준공돼 현재 재건축이 한창인 둔촌주공아파트는 한때 6000여 세대와 25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이웃지간으로 지내던 터전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기로 하면서 고양이들은 위험에 처했다. 밥을 주며 정을 쌓은 캣맘들과 고양이가 죽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던 활동가들은 ‘둔촌냥이’를 꾸려 고양이들을 이주시키기로 한다. 정 감독은 입주민 이주가 시작된 2017년부터 2년 반 동안 둔촌주공아파트를 드나들며 이들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았다.

과정은 쉽지 않다. 고양이가 워낙 많아 정확한 숫자와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만 해도 산더미 같다.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공사장은 곳곳이 위협인데, 고양이들은 자꾸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이다. 때론 활동가와 캣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나기도 한다. 고양이들이 뭘 원하는지, 무엇이 그들에게 최선인지 서로 의견이 달라서다. 이 여정의 고단함은 길고양이 생존 문제를 개인의 선의와 애정으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며 공존을 위한 고민에 불을 지핀다.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스틸. 엣나인필름

작품의 미덕은 길고양이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데 있다. 고양이들이 겪는 고통을 볼거리로 소모하지 않고도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를 성찰하게 한다. 질문은 고양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연히 건물 안으로 날아들었다가 창문 안에 갇힌 새, 뿌리째 뽑혀 나가는 나무 등 도시에서 죽거나 소모되는 이들을 카메라는 담아낸다. ‘둔촌냥이’ 활동가이자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낸 이인규 작가는 지난 4일 열린 ‘고양이들의 아파트’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제일 귀한 건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장편영화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로 이름을 알린 정 감독이 영화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 ‘아파트 생태계’에 이어 내놓는 네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정 감독은 “이 작품이 특정 아파트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계속되는 도시에서, 고양이들의 생존은 보편적인 이슈”라면서 “20년 전엔 고양이가 한국 사회에서 먼 존재였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파생된 갈등과 학대 문제도 있다. 나와 도시 속 고양이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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