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김지훈 감독 “건우의 아픔, 온전히 전달됐나요” [쿠키인터뷰]

‘니 부모’ 김지훈 감독 “건우의 아픔, 온전히 전달됐나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4-23 05:51:02
김지훈 감독. 마인드 마크

감독 이름을 다시 찾아봤다. 다시 봐도 영화 ‘화려한 휴가’, ‘타워’, ‘싱크홀’을 찍은 김지훈 감독이 맞았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이하 ‘니 부모’)는 제목만큼 학교 폭력을 가해자 시선으로 파헤친 충격적인 영화다. 주로 재난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감독의 신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길을 고집한다. 촬영한 지 5년 만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에서 더 놀랍다.

지난 20일 화상으로 만난 김지훈 감독은 극 중 피해 학생으로 등장한 건우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했다. 2012년 공연된 일본 희곡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것도, 촬영 중 매일 같이 절벽을 찾아간 것도, 개봉하지 못하고 버티는 시간 속에서도 건우를 떠올렸다. 극 중 건우가 느꼈을 아픔을 생각하고 분노하고 이해하려 했다.

“2012년 ‘타워’를 끝내고 작품 결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때까진 재난영화에 집중했죠. 처음 ‘니 부모’를 접하고 엄청난 분노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어요. 그 분노가 시나리오 수정하고 작가님과 회의하면서, 촬영하면서 점차 사라졌어요. 대신 건우의 영혼이 파괴되는 아픔에 또 하나의 분노가 생겼죠. 처음 출발할 때 분노와 마무리할 때 분노는 다른 결이었어요. 지금은 세상이 건우를 어루만져주지 않고 은폐하고 등한시하는 것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아직 팬데믹 상황이라 원작자님께 완성된 영화를 보여주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는 보여드렸고 ‘참 잘 고쳤다’, ‘이게 가능하겠냐’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아픔을 관객에게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셨어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스틸컷

원작 연극을 보며 연출자로서 흥미를 가진 건 가해자의 시선이었다. 기존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들이 피해자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랐다. 처음 도전하는 작업에 두려운 마음도 컸다.

“보통 피해자의 아픔이나 건우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니 부모’는 관객이 만나는 지점이 가해자라 두려웠어요. 연출자로서 가해자 마음에 들어가야 하고, 가해자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두려움에 가까웠어요. 가보지 않은 곳이어서 처음엔 많이 헤매기도 했어요. 제가 학부모가 될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우리 아들이 학교 폭력 피해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니 부모’를 하고 나서 우리 아들이 가해자가 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와 제가 영화 속 공간에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가해자를 어떻게 할 거냐 질문엔 여전히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같아요. 여전히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건우의 아픔이 온전히 전달됐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영화예요.”

‘니 부모’를 연출하는 김지훈 감독의 태도는 다른 영화와 달랐다.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 세상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다. 그래서인지 가장 김지훈답지 않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다. 영화를 본 아내도 앞으로 이런 영화만 찍으라는 말을 남겼다.

김지훈 감독. 마인드 마크

“아내에게 그 얘길 듣고 지금까지 찍은 건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훈 영화 맞아?’, ‘김지훈 많이 반성했네’라는 반응도 신선했고요. 저도 감독인 동시에 한 명의 인간이라 트라우마에 많이 시달려요. 제가 행복하려고 ‘타워’와 ‘싱크홀’을 찍은 것도 있어요. ‘니 부모’ 같은 영화는 스스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서 접근하지 못했죠. ‘니 부모’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찍은 것보다 한 아이 아빠로서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이 영화에서 연출이나 완성도까지 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진심을 느끼면 좋겠다’가 전부였어요. 다음 영화는 좀 더 잘 찍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보통 영화 촬영을 마치면 후반 작업을 거쳐 1년 정도면 개봉 시기를 잡는다. ‘니 부모’는 무려 5년이 걸렸다. 배우 오달수가 미투 논란에 휩싸이며 2018년 설 개봉이 미뤄졌다. 배우 정유안까지 성추행 혐의를 받으며 개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지훈 감독은 “극장 배급이 5번 바뀌고, 개봉이 6번 연기됐다”고 개봉에 이르기까지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극장이 아닌 OTT로 공개하자는 제안도 받았지만 극장 개봉을 고집했다.

“누군가가 저를 영화 일곱 편을 찍은 원로라고 하더라고요. 영화는 데이터로 쌓이지만, 전 할 때마다 0점을 만들어서 다시 해요. 최근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들었어요. OTT로 시선을 많이 돌렸죠. 연출자로서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것 만큼 두려운 게 없어요. 오랜만에 영화관 시사회에 온 관객들이 ‘2년 만에 극장 왔는데 좋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하고 말해주셨어요. 감사한 말이었어요. 지금도 마음에 숨 쉬고 있는 건 ‘누가 건우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예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였어요. 그 메시지가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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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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