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 대비하려면… “중앙감염병병원 절실” 

다음 팬데믹 대비하려면… “중앙감염병병원 절실” 

기사승인 2022-05-03 07:00:13
국립중앙의료원과 의료계 전문가들이 2일 ‘코로나 이후, 감염병 대응체계 개혁 왜 필요한가’ 포럼을 진행했다.   사진=한성주 기자

국가 감염병 대응체계를 전면 개혁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이후 닥쳐올 새로운 감염병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2일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 이후, 감염병 대응체계 개혁 왜 필요한가’ 포럼을 개최하고 국가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과 중앙감염병병원의 역할을 모색했다. 포럼은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의 인사말씀과 진성찬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본부장의 진행으로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임준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이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코로나19 대응체계는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실패했다. 방역과 의료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중앙감염병병원’이 지휘하는 유기적인 감염병 대응체계가 없어 사회적 비용과 국민건강 피해가 확대됐다는 아쉬움도 크다.

중앙감염병병원은 신종감염병 및 고위험 감염병 대응을 지휘하는 핵심 의료기관이다. 앞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의 일환으로 정부가 설립·운영을 추진 중이다. 현재는 국립중앙의료원이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임시적으로 중앙감염병병원 역할을 수행 중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정식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되려면 시설, 장비, 인력, 병상 등을 대폭 확충해 고시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임승관 원장은 ‘코로나 경험에 따른 국가 감염병 대응체계의 평가 및 대안’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의 방역 전략을 시점별, 정책 영역별, 대응 능력별로 분석·평가했다. 임 원장은 “K 방역은 성공적인 부분과 실패한 부분이 모두 존재하며, 성패라는 이분법적 논쟁에 매몰되지 말고 보완의 여지가 있는 지점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팬데믹에 대한 이해 부족 △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한계점으로 꼽혔다. 사회, 정책, 전문가,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팬데믹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염병 확산 초반에 유효했던 전략을 후반까지 고수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정책 결정자가 브리핑실 등에서는 파악하지 못하는 요양시설, 병원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문제점도 컸다. 

지정 병원 중심 체계로 대응한 것이 결정적 오류로 지적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보편적 의료체계를 통해 관리했다면, 확진자가 하루 60만명까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보다 효율적으로 피해를 축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임 원장의 분석이다. 그는 “팬데믹은 의료자원 확보량 대비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 기본값임을 전제로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며 “민간의료기관이 95%, 공공의료가 5%의 비율로 존재하는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와 자원에 적합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임준 본부장은 ‘감염병 대응 체계에서의 중앙감염병원의 기능 및 역할’을 주제로 국립중앙의료원이 경험한 코로나19 대응체계의 문제점과 새로운 국가감염병 대응체계 구축방안 및 중앙감염병병원이 수행할 역할을 제시했다. 임준 본부장은 “방역에 집중한 나머지 의료 대응체계를 살피지 못했다”며 한계점을 분석했다.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은 방역과 의료를 단일한 주체가 지휘하는 방식으로 실행됐다. 이에 따라 방역에 의료를 복속시키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불필요한 입원, 비효율적 의료자원 소모가 반복됐고, 정작 입원 및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는 적시에 적정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됐다. 비(非)코로나 환자의 진료 차질과 같은 부차적 피해도 적지 않았다.

임 본부장은 방역과 의료는 그 목적과 수단이 상이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방역 중심 대응체계를 보완하는 의료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이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한다. 임 본부장은 의료인력, 의료접근성, 의사결정, 데이터, 소통 등 5개 분야로 요약되는 감염병 의료대응 과제를 성공적으로 소화하는 방안으로 중앙감염병병원을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 형성을 강조했다.

임 본부장은 “중앙감염병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모병원으로 해서 모든 의료자원이 따로따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융합적으로 활용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이 충분한 권한, 시설, 전문성, 인재를 확보한 컨트롤 타워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이 중앙감염병병원의 필요성과 바람직한 설립 방안을 의논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회는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좌장으로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광역시의료원장) △정백근 경상대하교 의과대학 교수 △방지환 서울시 보라매병원 교수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실장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조승연 원장은 “취약한 공공의료 확충하는 근본적 계획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있는 자원을 활용해 넘기려는 대응방식이 문제”라며 “최근 기존에 있는 대학병원에 중앙감염병병원 역할을 맡기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는데, 대학병원은 연구와 양성을 주요 목적으로 하기때문에 중앙감염병병원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주체”라고 우려했다. 이어 “감염병 대응은 정규군을 양성해야 하는 싸움”이라며 “10년 전부터 계속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같은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백근 교수는 “감염병전문병원은 기존 의료기관에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병원의 역량을 강화하기도, 약화하기도 한다”며 “단일 병원뿐 아니라, 해당 병원이 속한 권역 전체의 의료대응 역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두가 체감했듯, 전반적인 필수 의료 역량을 유지하는 선을 감안해서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 및 운영해야 한다”며 “감염병 진료체계 전반에 관련된 권한과 주체를 정리해, 정책 리더십을 가진 국립중앙의료원이 필수 의료와 감염병 대응체계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지환 교수는 “현재는 소위 ‘빅5’로 불리는 대학병원이 한마디 하면 국립중앙의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감염병 대응에 있어서 공공병원은 필요 없고, 민간병원의 기여를 확대하면 된다는 논리는 답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앙감염병병원 설치는 단순히 진료과 하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전문적인 자원과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독립된 중앙감염병병원을 세우거나, 한 의료기관에 그 역할을 위탁해 맡기면 된다는 구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정재수 실장은 “메르스 당시 대응 전략과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구사한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현장에 개선된 부분이 없었다”며 “마른 공공병원 쥐어짜고, 지극히 부족한 인력을 억지로 운용해 대응하는 체계였다는 비판이 컸다는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중앙감염병병원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근거법에 중앙감염병병원으로서 권한과 기능을 부여하는 조항을 추가해 명확한 컨트롤타워로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향 공공보건정책관은 “정부가 코로나19 초기 대응은 잘했지만, 갈수록 문제점이 불거졌다는 비판을 이해한다”며 “메르스 이후 준비가 미흡했던 문제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꺼번에 확인됐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추진이 더뎠던 자초지종으로는 “복지부도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편안을 서류상으로 진행했다”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지연이 있었고, 국립중앙의료원의 신축 부지를 결정하는 문제도 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중앙감염병병원과 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이라는 과제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답을 보여드려야 할 때”라며 “재정과 절차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의료기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기능과 연구기능을 복합적으로 갖춘 형태로 병원을 짓고자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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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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