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일명 MCU는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 4일 개봉하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감독 샘 레이미⋅이하 닥터 스트레인지2)는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다른 차원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멀티버스(다중우주)를 내세운 덕분이다. 무한히 많은 우주 속에서 기존 MCU 캐릭터가 새롭게 변주되고, 마블 코믹스 속 인물들도 MCU 데뷔 전초전을 치른다.
배경은 미국 뉴욕.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한때 연인이었던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의 결혼식에 갔다가 괴물에 쫓기는 10대 소녀를 발견한다. 가까스로 구해낸 소녀의 이름은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 멀티버스 연결 통로를 열 수 있는 차베즈는 자신을 노리는 악마를 물리치려면 고대 마법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트레인지는 차베즈에게 악마를 보낸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와 목숨 건 싸움을 눈앞에 뒀다.
어벤져스 일원으로 스트레인지와 함께 지구를 구한 막시모프가 악당이라니. 디즈니+에서 서비스 중인 마블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비전’을 보지 않았다면 갑자기 변해버린 막시모프가 낯설 것이다. 마블은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조 루소) 이후 등장인물들이 겪은 갖가지 일을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선보이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막시모프는 단란한 가정을 꾸린 막시모프가 있는 다른 우주로 가고자 한다. 영화 속 대사만으로도 막시모프가 겪은 일들을 유추할 수 있지만, 그가 왜 자식에 집착하고 어쩌다 강력한 힘을 갖게 됐는지는 ‘완다비전’을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마블 드라마까지 섭렵한 팬들이라면 반가울 만한 인물은 또 있다. ‘왓 이프…?’의 캡틴 카터다. 그는 멀티버스 속 또 다른 영웅 그룹인 일루미나티의 일원으로 나온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페기 카터를 연기했던 헤일리 앳웰이 이번에도 카터 역을 맡았다. 영화 ‘엑스맨’(감독 브라이언 싱어) 시리즈 속 찰스 자비에 역의 패트릭 스튜어트도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엑스맨’을 제작한 20세기 스튜디오가 디즈니에 인수되며 가능해진 컬래버레이션이다. 멀티버스 속 또 다른 캡틴 마블과 마블 코믹스의 미스터 판타스틱, 블랙 볼트도 만날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2’에선 스트레인지가 막시모프에 만나기 위해 여러 우주를 옮겨 다니는 과정이 그려진다. 각기 다른 우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스트레인지도 볼거리다. 말총머리를 한 스트레인지, 어둠에 빠진 스트레인지, 심지어 좀비 같은 모습을 한 스트레인지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배경과 성격을 지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택을 내린다. 그간 대의를 위해서는 비자발적인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던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를 여행하며 한층 성장한다. 팔머의 활약도 눈여겨 볼 만 하다. 다른 우주에서도 스트레인지와 사랑을 이루진 못했지만, 대신 든든한 동료가 돼 스트레인지를 돕는다.
영화 ‘이블 데드’ 시리즈와 ‘드래그 미 투 헬’ 등을 연출해 공포·호러 영화계 거장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도 장기를 뽐낸다. “MCU 영화 중 가장 무서울 것”이라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말처럼, 기괴한 비주얼과 놀라운 장치로 관객의 숨을 여러 번 움켜잡는다. 멀티버스 비주얼은 호화롭고 환상적이다. 대부분 웅장하며 때론 키치하다. 영적 존재를 소환한 상상력도 놀랍다. 1인 다역을 소화한 컴버배치와 엘라지베스 올슨은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다만 화면을 기울이고 늘리는 등 실험적인 장면도 있어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막시모프와 스트레인지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중반부는 산만한 느낌도 든다. 일부 캐릭터는 다소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MCU 확장을 위한 초석인지, 팬서비스 차원에서의 등장이었는지는 두고 봐야 알 듯 하다. 쿠키영상은 2개다. 스트레인지 다음 챕터가 궁금하다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12세 관람가.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