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울리는 전세사기…‘빌라왕’ 잡아라

세입자 울리는 전세사기…‘빌라왕’ 잡아라

세모녀 전세사기 집중보도 후 1년, 달라진 건 없다
꾸준히 늘어나는 피해자···뒤늦게 피해사실 인지한 경우도

기사승인 2022-05-30 06:01:02
서울 강서구 빌라 일대.   사진=김형준 기자

 

# “올해 6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었는데 압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전화를 피하고 전세보증보험은 신축이라 가입이 되어 있지 않다. 매매를 세입자보고 내놓으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전세사기 사례를 찾아봤더니 이미 같은 임대인 이름으로 피해자가 나온 경우가 있었다”

전세사기 관련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나온 사례는 바로 지난주 들려온 새로운 피해자의 소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은 보도로 굵직한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피해자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전세사기 피해 규모를 조사한 결과 피해자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없는 2030 청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빌라왕’의 세입자였다.

갭투자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빌라왕’은 한 명이 아니다. 그들은 매매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을 분석 후 해당 주택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한다. 이후 임차인들이 지불한 전세금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형식이지만 해당 주택 매매가가 떨어질 경우에는 손해를 입게 된다.

주요 빌라왕으로는 2019년 화곡동 일대에 100채가 넘는 빌라를 소유해 화제가 된 강씨, 지난해 600채의 빌라로 대규모 투자 행각을 벌인 것으로 나타난 ‘세모녀’, 최근 1200채가 넘는 빌라를 가지고 각종 세금 72억원을 체납한 권씨 등이 있는데 이들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개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빌라왕은 주로 세입자들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집을 구매한 뒤 계약 만료 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다. 자금이 충분한 세입자에게는 이참에 전세가 아니라 해당 주택을 구매하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세입자의 경우는 바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구조다.

언론을 통해 빌라왕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아직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도 강서·강동·구로·인천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한 임차인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구로구에 거주하는 피해자 A씨는 “계약만료일 이후에도 세모녀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세금 반환 소송 및 피해자들끼리 단체로 진행한 형사소송에도 참여했다”며 “변호사 선임료 등 사건이 길어질수록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늘고 있지만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세모녀 전세사기 피해자 B씨는 “임대차계약 종료 반년전부터 임대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세계약 만기까지 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답변에 회피 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민사소송은 승소했지만 실질적인 피해금액과 관련된 보상에 대해서는 진전이 없다”고 설명하며 “형사소송은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다는 소식 외에는 1년 넘게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은 세모녀의 근황에 대해 “최근 합의를 보러 다닌다는데 저희에게 온 연락은 없다”며 “강남에서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리더라, 검찰불구속 조사 이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기죄가 판례가 없어서 입증이 안되고 있고, 전세대출도 연체되어 신용불량자 상태가 된 저희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해당 피해자들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취재 결과, “이런 일이 생길줄 전혀 몰랐다”며 가입을 하지 않은 피해자(강서구 거주), “뒤늦게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가입을 시도했지만 임대인이 HUG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어 불가능했다”고 밝힌 피해자(인천 거주), “첫 입주후 가입을 시도했지만 근린생활시설이라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피해자(관악구 거주) 등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했지만 지급을 거부받은 경우도 있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제가 이사하는 날 집주인이 변경되어 대항력이 없었다”라며 “집주인이 변경되었는데 계약서에 승계내용이 없어서 승계확인이 불가능해 변제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전세와 매매를 동시에 진행한 결과 세입자는 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었다.

늘어나는 사기에 부동산 업계에서는 아예 리스크가 높은 주택을 소개시키기 꺼려하는 눈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신축 빌라는 차후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손사래를 치며 “새로 분양하는 경우 초반 가격 거품이 심하다. 이게 빠지면 역전세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관계자 역시 “연식이 있지만 수리를 완료한 빌라나 오피스텔 쪽으로 추천한다”라며 “오피스텔은 비싸게 들어가도 시세가 형성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오피스텔에도 사기꾼들이 눈독을 들이는 추세라 방심하지 말고 꼼꼼히 알아보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봤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모두 지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고 새로운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의 관련 법안 구체화 및 조속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김형준 기자 khj0116@kukinews.com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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