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동원에게는 ‘소년미’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붙는다. 말 그대로다. 시간이 지나도 스크린이 담는 그의 얼굴엔 늘 소년 느낌이 있다. 맑고 무해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그늘진 분위기가 그를 은은히 감싼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그랬다. 이 같은 말에 강동원은 고개를 갸웃댔다. “제가 소년미가 있나요?” 그러다 이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사연 있는 캐릭터라 그런가 보죠.”
강동원이 최근 연기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속 동수는, 그의 말마따나 사연 있는 인물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아이들이 좋은 가정에서 크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아 매매에 뛰어든다. 선의가 범죄로 이어진 아이러니다. 상현(송강호)과 동업하던 그는 소영(아이유)의 아이를 팔아넘기려다 그와 기묘한 동행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에게 뜻밖의 가족애가 싹튼다. 최근 서울 소격동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브로커’는 인간사와 가족,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며 “동수의 순수함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획 단계부터 고레에다 감독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사실, 작품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을 때에는 시나리오가 아예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어요. 고레에다 감독님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죠. 시놉시스와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을 때부터 감독님과 계속 소통을 이어갔어요. 감독님이 프로듀싱을 함께 하자고 하셔서 제가 영화사도 소개해줬어요. 작품을 완성해가는 단계에 저도 힘을 보탠 거죠. 하하.”
고레에다 감독은 처음부터 강동원을 생각하며 동수 캐릭터를 만들었다. 제작에 함께 참여한 만큼 강동원은 동수 역할에 자신의 색을 듬뿍 입혔다. 보육원 출신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캐릭터 구축에 힘을 쏟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세심히, 생동감을 더하면서 강동원 표 동수가 탄생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빠지면 종종 하는 실수가 있어요. 동수를 예로 들면, 보육원 출신이란 이유로 일부러 더 우울하게 연기하는 식이죠. 그러지 않으려 했어요. 제가 실제로 만나본 분들도 그랬으니까요. 다들 저마다의 꿈을 안고 사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분들과 만나서 나눈 얘기도 대사에 넣었어요. 중요하게 생각한 건 동수가 가진 신념이에요. 아이들은 보육원이 아닌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팔게 된 사람. 보육원에서 자란 동수가 할 만한 생각이다 싶었어요. 동수는… 순수한 사람이니까요.”
외신에선 ‘브로커’ 내용을 두고 범죄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반면 작품이 말하는 생명과 가족애에 찬사를 보내는 반응도 있었다. 평이 갈리는 것에 대해 강동원은 간결히 답했다. “자기 취향이 아니었나 보죠. 영화가 모든 사람 마음에 들 수는 없는 거니까요.” 비판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범죄를 미화했다기엔 모두가 다 벌을 받고 끝나서요. 하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영화면 문제죠. 하지마 지은 죄에 따라 벌을 받았으니, 무조건적인 미화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감동했다는 외국 관객들의 평은 새로웠단다. “제 외국 친구들이 소소한 영화라고 했으면서 왜 이렇게 슬프냐고 화를 내더라고요. 작품 정서에 이렇게까지 공감해줄 줄은 몰랐어요. 칸 영화제에서도 ‘브로커’ 반응이 가장 좋았거든요. 열렬한 반응들이 신기했죠.”
스스로도 작품에 감화되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이야기 순서에 따라 촬영이 진행돼 작품에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촬영 일수가 쌓일수록 강동원에게 동수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스타일도 한몫했다. 세트 촬영을 지양하고, 운전 장면도 배우가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찍는 식으로 진행됐다. 현장 콘티(촬영용 연출 대본)가 촬영 당일 바뀌는 일도 더럿 있었다. 그렇게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는 모습을 갖춰갔다. 동수의 주요 장면에는 강동원의 아이디어도 더해졌다. 관람차에서 소영의 눈을 가려주는 동수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눈물이 떨어질 때쯤으로 타이밍을 잡아보려 했어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제가 냈던 아이디어예요. 의견이 꽤 갈렸지만, 제가 자신 있다고 했죠. 생각했던 타이밍에 (이)지은 씨가 눈물을 흘리려 해서 손을 딱 댔어요. 정확히 맞더라고요. 동수에게 소영은 ‘날 버린 엄마’를 이해하게 하는 매개인 만큼 감정선에 더 신경 썼어요. 지은 씨와 호흡도 좋았죠. 송강호 선배와는… 눈만 마주쳐도 통하던데요? 하하.”
‘브로커’ 기획에 참여한 것을 기점으로, 강동원은 또 다른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직접 쓴 시놉시스로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연출이 아닌 프로듀싱”이라고 말을 잇던 그는 “나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지만 제작이 안 될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필요에 의해 쓴 작품들이에요. 나이 들면 이런 건 더 이상 못 찍겠다 싶어서, 더 늦기 전에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판타지 작품을 써봤어요.” 그의 꿈은 여전히 배우로 올곧게 뻗어있다.
“제작자가 꿈인 건 아니에요. 제작은 단순히 재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하는 거라서요. 전 여전히 최고의 배우를 목표로 두고 있어요. 사람들이 ‘와, 저 사람은 진짜 좋은 배우야’라고 하면 그게 최고의 배우 아닐까요?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래도 조금은 고무적인 게, 얼마 전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잖아요. 그동안 한국 콘텐츠의 위상도 달라졌고요. 시장은 이미 열렸으니, 저도 더 열심히 해야죠.”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