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이 해석한 ‘브로커’ 속 그 대사 [쿠키인터뷰]

이지은이 해석한 ‘브로커’ 속 그 대사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6-15 06:00:40
가수 겸 배우 이지은. 이담엔터테인먼트

가수 겸 배우 이지은은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마친 2020년 어느 날, 까닭 없이 엄마의 삶이 궁금해졌다. 한때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던 그가 엄마라니. 가수 이효리처럼 엄마이기에 가능한 헌신과 사랑을 그도 겪어보고 싶었던 걸까. 지난 7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은은 말했다. “출산을 경험한 사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몸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하잖아요. 고통이 한순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큰 산을 넘어본 사람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밤샘 촬영 후 느낀 외로움”…그렇게 소영이 되다

이렇게 만난 인물이 8일 개봉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속 소영이다. 평범한 엄마는 아니다. 소영은 아이를 교회 베이비박스에 두고 떠나는 비혼모다. 혼자가 된 소영이 화장실에서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담아낸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에 ‘소영이 모유를 짜내 변기에 흘려보낸 뒤’라는 단서를 달았다. “밤을 샌 뒤 찍은 장면이에요. 머리는 멍한데 햇살은 쨍해서 묘하게 외롭더라고요. 그런 제 상황과 소영의 감정이 어우러져 아주 공허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지은은 이렇게 돌아봤다.

영화 ‘브로커’ 스틸. CJ ENM

작품에서 소영은 낯선 사람들과 기묘한 동행을 한다. 베이비박스 속 아기를 빼돌려 돈을 받고 입양 보내는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와 손잡고 아들 우성의 양부모를 물색한다. 소영의 마음은 내내 불투명하다. 이지은은 “소영은 우성이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모른 척하려는 인물”이라며 “사랑이 드러나지 않도록 연기하기가 매순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고민이 무색할 만큼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이지은은 이 영화의 영혼”(미국 어워즈와치), “여우주연상 1순위”(영국 필름랜드 엠파이어)라는 찬사가 나왔다. 이지은은 ‘브로커’를 들고 지난달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왔다. 상현 역의 송강호는 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제게 남은 운을 다 끌어 썼다고 해도 될 정도로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지은은 즐거워하면서도 과하게 들떠 보이진 않았다. “촬영 당시엔 너무 긴장한 바람에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자주 못 나눴거든요. 칸에 다녀오면서 ‘이때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용기 내 말할 사이가 됐어요.” 평소 좋아하던 고레에다 감독과의 작업도 “행운”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이지은의 팬이 됐다고 한다. “감독님 전작을 보며 ‘얼마나 깊게 인간을 이해해야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환상이 컸어요. 함께 일한 감독님은 제가 상상한 것보다 좋은 어른이셨고요. 좋지 않은 순간이 단 1초도 없었어요.”

이지은. 이담엔터테인먼트

소영과 이지은이 선택한 동행

“태어나줘서 고마워.” 극중 소영이 상현과 동수 등에게 건네는 이 인사는 ‘브로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메시지다. 이지은은 “사람 대 사람,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건네는 유대의 말”이라고 봤다. “처음 대본에서 그 대사를 봤을 땐 모두의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연기할 땐 달랐어요. 그들과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으로서 대사를 쳤던 기억이 나요.” 이지은은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대사만큼이나 그 과정 또한 긴 잔상을 남겼다고 돌아봤다.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나오지만 누군가의 가치관을 관철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동행하겠다고 선택하는 과정, 그렇게 연대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지은은 영화 밖에서도 ‘살리는 사람’이다. 생일과 데뷔일 등 기념일마다 미혼모협회,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에게 거액을 기부해왔다. 10대 때 방송을 촬영하며 알게 된 보육원과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내가 작품에서 했던 표현이 영아원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지 계속 생각했다”며 “내가 소영에게 품은 연민 때문에 소영이가 흐려져선 안 된다고 복기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나의 아저씨’ 속 지안, ‘호텔 델루나’ 속 만월 등 아픔을 삼키고 날을 세우는 인물을 자주 연기했던 이지은은 “차기작 ‘드림’(감독 이병헌)에선 일상적인 인물을 표현한다”며 “촬영하면서 어떤 해소를 느끼고 있다”고 귀띔했다.

“연기는 어렵지만 재밌어요. 내가 나로만 살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보거든요. 제가 소영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비혼모, 엄마, 보육시설 아이들을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을까요. 잠깐이나마 다른 인물을 입으면서 원래의 나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면을 건드려 보는 게 즐거워요. 크고 좋은 운이 저를 찾아와 줬으니 앞으로는 더 열심히, 훨씬 잘해야겠다는 각오가 듭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