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에 자판기까지... 의약품 판매원칙 ‘흔들’

배달앱에 자판기까지... 의약품 판매원칙 ‘흔들’

약 배달·화상판매 시도하는 산업계 vs 약국 ‘갈등 심화’

기사승인 2022-06-17 07:00:06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이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새롭게 등장한 의약품 판매 서비스 방식들이 약국가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정부가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국정과제로 본격 추진하면서 약 배달, 화상 판매 등의 방식을 시도하는 산업계와 약국가의 갈등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최근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서비스는 의약품 화상 판매다. 키오스크와 유사한 모습의 기계 ‘화상투약기’로 화면을 통해 약사와 원격으로 상담하고, 일반의약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약국 앞에 설치해 심야 시간이나 휴일에도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스타트업 ‘쓰리알코리아’가 개발했다. 

화상투약기는 오는 20일 예정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실증특례 안건으로 부의됐다. 앞서 과기부는 지난해 12월 심의위원회에서 이해관계자간 상생 협의를 전제조건으로 해당 서비스에 대한 심의를 보류했다. 

개발된 시점은 지난 2013년이지만, 화상투약기는 아직 정식으로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약사법상 규제를 극복하지 못한 약점이 컸다. 현행 약사법 제50조 1항은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약국 밖에 설치된 기계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인 셈이다. 약국 내에 기계를 설치하고 화상통화를 위한 화면만 약국 밖으로 노출하는 형태의 기계도 나왔지만, 이런 방식과 관련된 규정이 없어 입법 공백 상태로 방치됐다.

약국가의 반발도 거셌다. 화상으로 상담만 해주는 약사를 고용해, 여러대의 기계를 설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편법 영업자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런 탓에 해당 서비스를 지칭하는 단어조차 업계는 ‘화상투약기’, 약국가에서는 ‘약자판기’ 등으로 상이하다. 

의약품 화상 판매기가 10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진 동안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등장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비대면 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다. 약국 근처까지 가야 하는 화상 판매기보다 나아가, 집에서도 앱을 이용해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의약품 배달 역시 약사법을 위반 소지가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앞서 2020년 2월부터 보건복지부가 공고를 내고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었다. 이 공고는 보건복지부가 언제든지 종료를 선언할 수 있어 한시적인 효력만 가진다. 공고가 종료되면 현재 운영 중인 의약품 배달 앱들도 화상 판매기처럼 오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업계와 약국가의 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비대면 진료 관련 불법행위를 자행한 플랫폼 업체 1개소, 의료기관 2개소, 약국 4개소 등 총 7개소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약국에서는 처방전과 다른 약을 임의로 조제하거나, 약사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가 약을 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대면 의약품 판매의 부작용에 대한 약사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대한약사회는 정부를 향해 약사법 위반 행태를 방치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의약품 정책이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단순한 산업 논리를 적용해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은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고 “국민의 의약품 구입불편은 심야약국 운영을 확대해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약자판기를 허용하는) 이러한 제도는 근본적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의 입장은 이와 평행선이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처방을 받은 전문의약품도 택배로 배송해 받는 상황인데, 약사와 화상통화로 충분한 상담을 거쳐 약을 구매하는 화상투약기가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은 모순 투성이”라고 16일 반박했다. 이어 “현재 화상투약기를 도입하기를 희망하는 약국의 수요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실증특례가 성사되면, 다른 약국과 차별화를 원하는 약사들을 중심으로 점차 현장에 보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대표는 약사 출신으로 화상투약기를 개발해 쓰리알코리아를 창업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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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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