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위한 성취.” 미국 언론사 복스가 영화 ‘탑건’(감독 토니 스콧)에 내린 평가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톰 크루즈)의 성장을 다룬 이 영화가 “군대와 군인의 삶을 섹시하고 흥미진진한 관점”으로 그려냈다는 이유에서다. 기실 ‘탑건’과 후속 ‘탑건: 매버릭’(감독 조셉 코신스키)은 국방부가 사랑해 마지않을 영화다. 영화를 본 젊은이들이 군인을 동경하고 자원입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30년 세월을 뛰어넘은 미군과 ‘탑건’의 애틋한 관계를 몇 가지 에피소드로 돌아본다. (* 기사 내용 중 ‘탑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원입대자 수가 폭증하다
1986년 개봉한 ‘탑건’은 전 세계에서 3억5000 달러(약 4000억원)를 벌어들이며 대흥행했다. 최신 전투기를 몰며 상공을 가르는 매버릭(톰 크루즈)의 매력에 빠진 미국 청년들은 곧장 해군 기지로 향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탑건’ 개봉한 해 해군 비행사가 되겠다며 자원입대한 젊은이가 전년보다 5배 늘었다. 해군 당국 역시 3100만 달러(약 400억 원)을 들여 ‘탑건’이 상영되는 극장에 입영 부스를 마련하는 등 신병 모집에 열을 올렸다. 이런 ‘입대 열풍’은 미국에서 지난달 먼저 개봉한 ‘탑건: 매버릭’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당국은 입영 광고 영상을 제작해 ‘탑건: 매버릭’ 상영 전 스크린에 내걸고, 극장에 부스를 설치해 입영을 권장하고 있다. 해군 모집 사령관 에드워드 W. 토마스 소령은 폭스뉴스에 “군대에 일자리가 있고 청년들을 기다리는 모집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라며 “이를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지원하다
미 국방부는 일찍부터 ‘탑건’과 우호적인 관계였다. 타임에 따르면 국방부는 ‘탑건’ 제작 당시 제트기와 항공모함 등 장비를 제공하고, 군사 기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펜타곤(국방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탑건’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지원 규모는 거대했다. 국방부가 제공한 해군 함재용 전투기 F-14 톰캣은 ‘탑건’ 제작비 1500만 달러(약 195억 원)의 두 배를 뛰어넘는 3800만 달러(약 495억 원) 상당이라고 알려졌다. 미군과 ‘탑건’의 인연은 ‘탑건: 매버릭’에서도 계속됐다. 미 공군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해군은 ‘탑건: 매버릭’ 촬영을 위해 항공모함 2척과 기지 4개를 제공하고, 배우들이 실제 탑건(미 해군 항공대 공중전 학교)에서 교육받도록 했다. 주인공 매버릭을 연기한 배우 톰 크루즈는 배우들이 곡예비행과 기내 높은 중력에 익숙해지도록 3개월간의 훈련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신체 훈련뿐 아니라 기내에 장착된 카메라를 스스로 다루기 위해 조명, 촬영, 편집 등을 배웠다고 한다.
대본을 수정하다
호의에 따른 대가일까. ‘탑건’ 제작진은 국방부 요청을 받아들여 시나리오를 여러 차례 수정했다. 매버릭의 파트너인 후방관제사 구스(안소니 에드워즈)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타임에 따르면 ‘탑건’ 제작진은 구스가 공중 충돌로 사망한다고 대본에 썼지만, 비상 탈출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다. 해군에서 공중 충돌로 인한 사망이 너무 많은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국방부의 염려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매버릭과 연인 관계로 나오는 찰리(켈리 맥길리스)는 원래 대본에선 동료 군인으로 설정됐지만, 이 또한 수정돼 민간인 박사로 등장했다. 해군이 장교와 사병 사이의 친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 전문 기자 데이빗 L 롭은 2004년 발간한 책 ‘헐리우드 작전: 펜타곤의 형태와 검열’(Operation Hollywood: Pentagon Shapes and Censors Movies)에서 “군대가 장비를 빌려주면 영화 예산 수백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런 도움을 받으려면 제작자는 대본 5부를 펜타곤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