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매출이 늘어난 재벌들을 위해선 세금을 깎아준다고 하면서 노동자 서민의 건강보험료를 18%나 올리려 한다. 말로만 민생을 외치면 되겠나.”
현정희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13일 국회 앞에서 이같이 규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한국노총,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은 이날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 13개 시도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 건 정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가 올해 말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108조에는 국가는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를 지원, 건강증진기금에서는 6%를 지원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올해 말에 일몰되는 한시적 조항이다.
당장 국고지원을 멈추면 건강보험료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 등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건보 재정을 과다하게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감염병 총 진료비가 2017년 메르스부터 2021년 코로나19까지 15조5876억원이 지출됐으나, 그중 건강보험 재정에서 82.9%인 12조9150억원을 지출했다고 단체는 설명했다.
박중호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위원장은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으로 코로나19 입원‧치료비, 유전자 증폭(PCR)검사, 예방접종비, 의료인력 지원비 등 수조원을 지급했다. 심지어는 코로나19로 인해 보험료까지 경감하는 제도로 발 빠르게 대응해 국민을 든든하게 지키는 버팀목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재난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낸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중단된다면 국민들에게 약 18% 가까이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건보료 재정 파탄으로 인해 보장성 후퇴를 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정부의 역할 강화는 필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성규 무상의료운동본부 집행위원장(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강화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일몰 폐지된다면 90%가 넘는 급격한 보험료 인상은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고지원이 끝나면 서민들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국고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물가 시대에 우리의 보험료가 크게 오르거나 의료 보장이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5만원 이하를 납부하지 못한 생계형 체납자가 8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생계가 어려워서 보험료를 못 내는 서민들은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윤 정부 건강보험 정책에는 ‘지출 효율화’라는 단어밖에 없다”며 “건강보험 정부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게다가 그동안 법에서 정한 정부지원금의 실질적인 지원이 법정 지원율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들은 지난해까지 정부의 과소지원금액이 32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지금까지 미납금이 32조원에 이른다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얼마나 국민의 건강을 무시하고 있는지 반증하는 것”이라며 “물가가 치솟으면서 국민들의 삶이 파탄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비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선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정책으로 시행돼야 한다. 건보 재정으로 의료산업화, 혁신의료기술 개발에 사용돼선 절대 안 된다. 오직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도 “정부는 지금까지 지원하지 않은 약 32조원의 건강보험 재정 과소 지원 금액을 즉각 지급하고 건강보험 정부지원법을 제정해 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의 30% 이상 확대하고 가입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인한 국민 삶의 고통과 저출산·고령화 사회 진입은 더 이상 건강보험료에만 의존하는 재원 마련은 한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했다”며 “정부는 건강보험 정부지원을 적어도 30%로 확대하고 불명확 규정을 명확히 해 정부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건강보험법 및 건강증진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과소 지원된 미납금 32조원 지급 △건강보험 정부지원 확대 방안 마련 △건강보험법 정부지원 및 건강증진기금 부칙 일몰제 즉각 폐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가 지원 확대 및 항구적 재정지원 법제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고된 코로나19 감염병 지원비 중 건강보험 재정지출분 3조7473억원 지급 △의료상업화·민영화 정책 폐기 △공공의료 확충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한편 단체는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 대국민 1차 캠페인을 다음달 31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진행할 방침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