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 창구로 국민과 소통한다. 특히 최근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청년 정치인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신의 행보를 밝히고 있어 'SNS 정치’는 더 주목받는다.
기성 정치인들도 SNS를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등은 유튜브 등을 활용해 여러 세대와 접촉을 늘려 자신의 정치적 구심점을 만들고 있다. 홍 시장은 별도의 플랫폼인 ‘청년의 꿈’을 만들어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SNS 활동은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 발달이 되지 않았던 20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 중 하나는 ‘조문 정치’다.
활동 공간이 많지 않았던 시기 정치인들은 장례식장에서 여론을 형성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정치의 반은 상갓집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며 “조문을 하게 되면 상주들이 고맙게 느끼고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의리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런 쪽으로 많이 다녔다”고 설명했다.
대개 조문은 ‘돈이 많이 든다’고 표현한다. 조화를 보내거나 부의금을 낼 때 큰 비용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직접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렇듯 ‘대면 정치’는 당시 정치인들이 여론 형성을 위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정치인들은 조문 정치 이외에도 지역 동호회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9년 4월 한겨레신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 동해시를 방문해 대중집회를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김 전 대통령은 송원시장과 묵호역 광장 등에 방문해 당원단합대회 등을 열었다. 그곳에서 국민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이전에는 ‘지라시’ 정치도 있었다. 1970년대는 야당 정치인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행운의 편지’를 쓰는 식으로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1971년 4월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는 “김창근 공화당 대변인이 김대중 신민당원(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법 데모를 감행하며 여당과의 충돌 유발을 각 지구책에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김창근 대변인은 “김 전 대통령이 ‘행운의 편지’식으로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 2만여장을 발송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라시’ 식의 여론 형성이 있었다는 증거다.
전문가는 당시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보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19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대중적인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고 친목을 도모했던 게 당시 정치인들의 공적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방법”이라며 “독재 정권에서도 친목 도모 자체를 막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신문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론에 정치인들의 행보가 잘 나오지 않았다”며 “일반 유권자들과 소통하기에는 ‘발로 뛰는 것’이 제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에는 이러한 장외 정치가 매우 활발했다”며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방법이었다”고 전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