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더 다양한 우영우가 필요해 [‘우영우’ 신드롬③]

더 많은, 더 다양한 우영우가 필요해 [‘우영우’ 신드롬③]

기사승인 2022-07-21 11:00:02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의뢰인이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그는 남의 말에 잘 속고 거짓말도 못한다. “만약 남에게 속아 넘어가기 대회가 있다면 자폐인이 1등할 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우영우에게 같은 로펌 송무팀 직원인 이준호(강태오)는 묻는다. “음, 왜죠? 자폐를 가진 분들이 순수해서 그런 걸까요?” 지난 14일 방송된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한 장면이다.

순수함, 천진함, 어린 아이 같은 귀여움…. 그간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자폐성 장애인을 비롯한 발달장애인에게 한결같이 부여해온 속성이다. 우영우처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KBS2 ‘굿 닥터’ 속 박시온(주원)은 방영 내내 ‘국민 힐링남’으로 소개됐다. 순수하고 따뜻한 성정으로 주변 인물을 치유한다는 의미에서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자폐성 장애인 문상태를 연기한 배우 오정세 역시 보도자료에서 “힐링 요정” “순수 결정체”로 표현됐다.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의 용구(류승룡), ‘맨발의 기봉이’(감독 권수경)의 기봉 등 미디어 속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갈등과 욕망이 제거된 표백 상태로 그려졌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이런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래에 관심을 보이고 반향어(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행위)를 하는 등 우영우가 보이는 자폐성 행동은 드라마라는 필터를 거쳐 엉뚱하고 귀엽게 묘사된다. 우영우는 멜트다운(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움) 상태에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쓰지 않는다. 비장애인과 높은 수준으로 교감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비장애인보다 지능이 높은 고기능 자폐성 장애인이다.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김정훈(문상훈)은 중증도 자폐성 장애인이다. 방송 캡처

작품은 한계를 스스로 인식한 듯 장애인을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자폐를 가진 분들이 순수해서”라는 이준호의 온정적 선입견을, 우영우는 “사람(비장애인)들은 나와 너로 이뤄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뤄진 세계에 사는 데 더 익숙해서 그렇다”고 바로잡는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중증도 자폐성 장애인 김정훈(문상훈)이 등장하는 3회에선 이런 말도 나온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가진다는 당연한 진리가 자폐성 장애인에겐 적용되지 않는 모순을 꼬집는 대사다.

대중 매체가 장애인의 목소리를 기이할 정도로 지워낸 상황에서, ‘순수하고 무해한 장애인’은 개성 있는 개인이 아닌 아닌 집단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호감형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이런 설정이 오히려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장애인의 모습에 문턱을 높일 위험도 있다. 우리에게 더 많은 우영우, 더 가지각색인 우영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장애인이 다양해질수록,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는 장애인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장애인 가족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장애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미디어 속 장애인 재현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은 “중증도 자폐성 장애인은 미디어에 재현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다만 미디어에 더 많은 장애인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비장애인이 그렇듯 각기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졌다. 분명한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 수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제는 장애 극복 서사에서 벗어나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일상적 존재로, 진지하게 표현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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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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