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초등 입학 ‘진통’…해외 사례 살펴보니 [놀이터통신]

만 5세 초등 입학 ‘진통’…해외 사례 살펴보니 [놀이터통신]

교육부 대처 미흡…교육계·학부모 반발 계속
OECD 38개국 중 한국 포함 26개국 만 6세 취학

기사승인 2022-08-02 14:21:12
쿠키뉴스DB

교육부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한 추진이 교육계는 물론, 부모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은 정책이 의견 수렴도 없이 불쑥 발표한 데 대한 반발이 거센 상황입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번 학제 개편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전제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 정책은 지난달 25일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아동돌봄분과위원회에서 발간한 ‘아동돌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방향 모색’ 이슈페이퍼에서 제안한 K학년제와 맥을 같이 합니다. K학년제는 영유아 교육 및 돌봄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제도로, 만 5세부터 의무 교육을 시행해 취학 전 단계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취지가 반영된 정책입니다.

박 장관이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출발선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정한 교육기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한 발언과 결을 같이 합니다. 박 장관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나흘 만인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교육부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르면 2025년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교육부 장관은 왜 갑자기 학제 개편안 이슈를 던졌을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을 포함한 26개국은 초교 입학연령이 만 6세입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리나라가 늦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 4~5세가 입학하는 국가는 영국, 아일랜드, 뉴질랜드, 호주 등 4곳에 불과합니다. 특히 이들 국가도 첫 취학 연령 하향보다 취학 전 유아교육 단계의 의무교육을 확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영국 초등학교 수업. 사진=EPA, 연합뉴스

영국의 경우 리셉션 학년제를 운영합니다. 초교 전 과정인 ‘0학년’ 개념으로 정교사 외에도 보조 교사가 아이들의 수업 진행을 돕습니다. 

뉴질랜드는 만 5세 생일이 되면 바로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Year1에 입학합니다. 0학년에 해당하는 Year0을 두고 생일이 지나지 않은 학생들이 입학 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호주 초등학교도 한국의 유치원 과정이 초등학교에 들어 가 초등 과정은 총 7년입니다. 만 5세부터 입학 할 수 있지만 생일에 따라 입학 시기가 다릅니다. 킨디(0학년) 과정은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나 만 6세부터는 의무 교육으로 우리와 똑같이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아일랜드는 만 4세에 초등과정에 들어갑니다. 다만 만 4~5세는 초등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유치원에서 하는 교육이 학교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완전한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0학년을 다닌다고 합니다. 

종합해보면 이들 국가는 초등 0, 1학년 교과과정은 우리나라의 유치원과 비슷하고, 우리보다 1년 긴 13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교육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핀란드, 스웨덴 등은 만 7세로 입학 연령을 늦추고 있습니다. 

OECD는 ‘교육지표(Education at a Glance 2021)’ 보고서를 통해 만 5세 입학이 가능한 4개국을 언급하며 “영유아교육·보육(ECEC) 프로그램은 학교와 사회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인지, 신체 및 사회 정서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초등 교육은 학생들에게 과목에 대한 이해와 읽기·쓰기, 수학 등 기본 교육을 제공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수한 품질의 ECEC는 아동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많은 증거에 따르면 학문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아동 주도의 자유 놀이가 아동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30여 개 교원·학부모단체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돌봄과 교육 기능을 이미 어린이집, 유치원이 하고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물론 의무교육이 아닌 만큼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소외되거나 방치될 가능성에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1949년 교육법 제정 후 76년 만에 학제가 바뀌게 되는 대형 이슈임에도 의견 수렴이나 정책 연구를 거치지 않고 교육 수장이 성급하게 공개한 것을 두고 “졸속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 냅니다. 돌봄·사교육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의 교육 실정을 고려한 마땅한 대안도 보이질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K학년제를 위한 과제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에서도 이미 짚은 바 있습니다. 위원회는 K학년 도입시 만 5세 이하 아동의 사교육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또한 현재 학령기 아동 돌봄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K학년 도입하면 돌봄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K학년에 해당하는 만 5세 아동의 경우 기존 학령기 아동보다 돌봄 수요가 높다는 점을 강조했고요. 

이미 위원회가 예측한 우려가 현실에서 그대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박 장관은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보장할 계획”이란 대응책을 내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맘카페 등에서 현재 초등 돌봄교실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절반 가까운 학생과 보호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교육부 수장이 제대로 이해하거나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와 함께 설익은 정책을 학교 현장에 불쑥 던져 놓으면서 반발이 일고서야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는 방식을 두고도 ‘아마추어 행정’이란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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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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