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은 다이어트 목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은 화장실 가기 편하다는 이유로 고구마를 많이 찾는다. 그러다 보니 주요 고구마 산지인 전남 ·해남·영암, 전북 고창·익산 등지에서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고구마 농사가 이루어진다.

그는 5.18관련 단체의 영암지역 회장을 맡고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박 회장’이라고 불렸다. 햇볕에 그을린 동그스름한 얼굴의 60대 초반 남자였다. 고구마 농사를 30만평 정도 한다고 했다. 그 규모에 놀란 나에게 그 지역에는 자신보다 더 크게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내가 가지고 간 ‘군고구마 제품’을 입안에 넣고 한참동안 우물거리더니 “해남 고구마로 이정도 만들었으면 영암고구마로 만들면 아주 훌륭한 제품이 되겠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농사꾼들이 흔히 하는 자식 자랑 비슷한 자부심 정도로 들었다. 나중에 영암 고구마로 물건을 만들어 보니 당도도 높고 식감도 좋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 고구마는 이미 다 처분해서 없으니 다른 분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서 소개할 사람은 고구마 농사를 50만평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165만2892m2(50만평)이라니 밭이 참 넓겠네.”라고 생각했다. 박 회장이 소개하는 그 분의 인생 스토리가 인상적이기에 잠깐 소개한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 이후 무작정 상경하여 동대문 시장에서 손수레 끄는 일부터 시작했다. 성실했던 그는 얼마간의 돈을 모아 고향으로 내려와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그는 돈을 버는 족족 서울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 부동산 가격이 올라 지금은 수천억 원 대의 자산이 형성됐다.
최근에는 영암에 15억을 들여 근사한 한옥을 지었다. 평생을 고구마 농사만 지어온 그 분의 고구마 품질은 믿을 만하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이야기 아닌가.

내가 왜 왔는지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시더니 내일 고구마 작업을 할 예정이니 와서 필요한 고구마 사이즈를 직접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하고 농장을 나왔다.
영암에서 지리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따듯했다. 마치 어릴 적 동네 친구와 동네 형을 만나고 오는 느낌이랄까.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하는 일의 크기에 걸 맞는 인품을.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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