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도 눈 뗄 수 없는 사냥의 시간 ‘헌트’ [쿡리뷰]

한 순간도 눈 뗄 수 없는 사냥의 시간 ‘헌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8-10 06:00:51
‘헌트’ 포스터

잘 찍었다. 역사, 액션, 첩보, 드라마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장르에 매몰되지 않는다. 반 발자국 앞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적당한 무게감과 속도감이 몰입을 돕는다.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하지 못해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 메시지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전달 방식도 인상적이다. 배우 출신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대한 편견을 깬 좋은 사례로 남기에 충분하다.

‘헌트’(감독 이정재)는 각자 원하는 목표를 향해 숨을 참고 달려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교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1983년 워싱턴. 대통령 방문 사실이 유출됐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로부터 테러가 발생한다.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가 함께 이를 막지만 내부에 동림이라 불리는 내부 스파이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동림의 존재가 확인되고, 새로 부임한 안 부장(김종수)은 해외팀과 국내팀을 모두 의심하며 서로를 조사하도록 지시한다.

1970년대 후반 안기부와 청와대 이야기를 재현하듯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영화다. ‘헌트’는 몇몇 사건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어느 시점에 벌어진 이야기라는 걸 긍정한다. 하지만 완전히 기대지 않고 픽션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시대정신에 관한 이야기 하지만, 운명에 수긍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박평호와 김정도 두 사람이 겪는 상황과 욕망에 집중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선점하려고 부딪치는 두 사람의 엇갈린 신념과 서로를 향한 이해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 끝까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영화로 완성했다.

‘헌트’ 스틸컷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 역시 영화에 긴장을 더하는 요소다. ‘헌트’는 한 명의 인물을 응원하다보면 결말이 훤히 보이는 기존 첩보 영화와 완전히 다른 결로 전개한다. 처음엔 영화의 시선이 박평호를 따라가며 관객이 믿어야 할 주인공으로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정도 역시 생명력을 얻는다. 나중엔 박평호와 비슷한 위치에서 균형을 형성한다. 영화는 둘의 대립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관객이 어느 편에서 갈등을 이해하고 풀어가야 할지 난감하게 한다. 완전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하나인 두 인물이 가진 미스터리 덕분에 영화는 중반부 이후에도 힘을 잃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치밀하게 설계된 영화는 아니다. 다소 불친절하게 넘어가는 순간도 있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도 여럿이다. 익숙한 배우들이 다수 카메오로 등장해 배우 감독의 영화라는 현실을 상기시켜 몰입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 몰입시키는 집중력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대단하다. 이성적인 계산과 성찰보다 본능적인 감각과 감정으로 그려낸 영화다. 모든 액션 장면과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의미 있고 흥미롭게 그려져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 정도면 관람보다 체험에 가깝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결국 실제로 의미 있거나 흥미롭지 않은 장면이어도,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건 이정재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이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예약한 듯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것처럼 배우 정우성의 연기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박평호의 반대편에서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김정도를 과하지도, 전형적이지도 않게 연기했다. 정우성에게 검은 정장을 입히고 장총을 손에 쥐어준 건 언제든 통하는 치트키를 쓴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5월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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