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가에서는 고구마를 캐면 소위 ‘큐어링’ 과정을 거쳐 고구마 전용 저장고에 저장한다. ‘큐어링’은 말 그대로 고구마가 상처 부위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온습도를 맞춰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마치 사람 몸의 상처 부위에 딱지가 앉는 것처럼 고구마의 흠집에 거무튀튀한 표막이 형성되고 그로인해 저장성이 좋아진다. 고구마 저장온도는 농가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략 10°c~15°c 사이로 맞춰준다.
고구마를 잘 아는 농사꾼들은 고구마 상태가 가장 좋은 시기는 11월부터 2월까지라고 한다. 11월 이전에는 맛이 덜 든 경우가 있고 3월 이후부터는 저장고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소비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고구마의 탄수화물이 엿당으로 바뀌어 고구마가 달달해진다. 주로 블로그나 SNS 운영자(인플루언서)를 통해 공동구매 형식으로 유통하고 있는데 판매량이 꾸준하고 소비자들의 평도 좋은 편이다.
한 가지 고민은 재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품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그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고구마 원물 상태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는 작년에 수확해서 저장해 놓았던 고구마를 사서 물건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북 익산에서 갓 수확한 햇고구마를 몇 박스 가지고 왔다. 숙성되지 않은 햇고구마는 전분이 많아 뻑뻑하고 단 맛이 거의 없다. 아무리 우리가 개발한 ‘당화공정’을 적용한다고 해도 단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단 맛이 약하고 식감도 좋지 않았다. 통상 한달 이상 걸리는 숙성기간을 1시간 내외의 공정으로 압축해보고자 했던 것인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
다행이 지난주에 가지고 온 햇고구마를 보관하면서 계속 상태를 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 맛이 올라오고 있다. 고구마의 단 맛이 웬만큼 올라왔다 싶으면 다시 오븐에 넣고 구워볼 생각이다.
창고에 펼쳐 논 고구마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외관부터 지난주와 달라 보인다. 처음 가지고 왔을 때는 때글때글 한 것이 전혀 물렁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고 만져보니 촉감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에 바로 작업하지 말고 고구마 상태를 봐가며 조금 기다렸다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밭에서 막 캐내 기운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놈을 다짜고짜 내 방식대로 길들이려 했으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고구마를 수확하는 농부들은 때를 기다릴 줄 안다. 나는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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