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김다솔 “고통이 많은 걸 말해줄 거라 믿었어요” [쿠키인터뷰]

‘인플루엔자’ 김다솔 “고통이 많은 걸 말해줄 거라 믿었어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8-30 06:01:12
배우 김다솔.   사진=박효상 기자

다솔(김다솔)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신입 간호사로 일하며 선배 간호사들에게 태움을 당한 다솔. 일상에 스며든 폭력 문화에 굴복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폭력의 대물림이 단절될 거라 선언한다. 넌 안 그럴 것 같냐는 선배에게 “전 안 그럴 것 같아요”라고 선을 긋고, 새로 온 신입 간호사 집에 놀러 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논다.

배우 김다솔은 영화 ‘인플루엔자’(감독 황준하)에서 전국에 퍼지는 전염병과 병원마다 퍼지는 간호사 태움 문화 한가운데에 있는 다솔을 연기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연기한 김다솔에게 지난 25일 개봉한 ‘인플루엔자’는 처음 출연한 장편 영화다. 영화 개봉 하루 전인 24일 오후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다솔은 3년 전 ‘인플루엔자’ 시나리오도 나오기 전 황준하 감독에게 출연 제안을 받은 이야기를 하며 “작품에 선택받았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다솔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부터 시작했다.

“간호사분들의 슬픔과 아픔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비로소 다솔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인지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타인의 아픔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더 섬세해지길 포기하면 그것으로부터 폭력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현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과 여러 활자들이 가교가 돼줬어요. 평소 일상을 살아갈 때도 예민하게 폭력을 감각하려고 했습니다. 다솔의 세계에 있으려면, 고통이 많은 걸 말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영화 ‘인플루엔자’ 스틸컷

‘인플루엔자’를 통과하며 김다솔의 세상은 달라졌다. 타인의 노동에 대해 너무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고,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배웠다.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간호사들을 위한 인권법이 왜 필요한지 알았다.

“공부할수록 간호 노동에 대해 무지한 제가 부끄러웠어요. 누군가의 고단함으로 나의 안락함이 유지됨을 절감하는 시간이었어요. 실제 촬영할 땐 모든 게 달랐어요. 텍스트로 본 건 내가 알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폭력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요. 전 간호사들이 처한 근무환경 재편, 처우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태움이 발생하는 건 인력이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한 구조 문제라고 생각해요. 불합리한 시스템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폭력이 반복되는 거죠. 반드시 간호사인권법을 제정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연기를 꿈꿨다. 처음엔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막상 입시를 위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더 진지해졌다.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이야기를 꺼내는 김다솔의 태도에서 그가 얼마나 연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껴졌다.

배우 김다솔.   사진=박효상 기자

“평소 제가 살아있다는 걸 망각하거든요. 고통이 찾아오면 강렬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연기할 때 그래요.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 내가 살아있네’ 하는 감각을 정말 강렬하게 느껴요. 그럴 때마다 연기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길 멈추지 않는 게 사랑이잖아요. 연기도 그래요. 제가 연기하는 세계를 이해해야 하거든요. 맡은 임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은 제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고, 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해요. 연기는 저를 사랑하게 만들어줬어요.”

김다솔은 언젠가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아니고, 작품이 그를 선택하는 것 같았다. ‘인플루엔자’가 그랬다. 영화가 그를 찾아왔듯, 많은 관객을 찾아가길 바랐다.

“영화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인플루엔자’를 찍으면서 그 말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겼어요. 제가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는단 걸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전 ‘인플루엔자’가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닿았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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