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고전게임을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와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오랫동안 즐겨왔는데요. 바다와 항해에 대한 로망을 가진 기자에게 대항해시대는 낭만이 가득한 게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안 페레로’가 등장하는 ‘대항해시대2’와 ‘라파엘 카스톨’이 주인공인 ‘대항해시대4’를 가장 재밌게 즐겼는데요. 두 작품은 시리즈 내에서도 뛰어난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지난달 23일 대항해시대 지식재산권(IP) 출시 30주년을 기념한 정식 후속작 대항해시대 오리진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모티프와 코에이테크모게임스가 합작해 공동 개발한 작품으로 대항해시대2와 대항해시대 외전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1일 기준으로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14위를 기록 중입니다. 통상적인 MMORPG 게임과 비교하면 그렇게 두각이 드러나는 수치는 아니지만, 게임 내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전면 배제한 비즈니스 모델(BM)을 도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지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리즈를 직접 즐겼던 3040 게이머들은 “예전의 향수가 그대로 느껴진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자의 지인은 “예전에 사회과 부도를 보고 희망봉, 라스팔마스와 같은 지역의 위치를 찾았던 생각이 난다”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열렬한 팬이었던 기자도 모처럼 재밌게 게임을 즐겼는데요. 풍향과 풍속, 조류 등을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빅데이터 기반으로 구축한 바다 흐름을 적용해 실제 항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타 최신 게임에서 거점이동이 가능한 것과 달리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항해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하면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토리 부분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요. 명작으로 손꼽히는 대항해시대2와 외전을 합친 만큼 등장하는 인물 간의 이야기도 굉장히 짜임새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르투갈인에 의해 오빠와 약혼자를 잃고 복수귀가 된 스페인 해적 ‘카탈리나 에란초’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해당 제독을 플레이하면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던 15세기 초 신항로 개척을 주도하던 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습니다. 두 국가는 남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각국 해군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역사를 알면 에란초가 포르투갈을 왜 그리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게임의 세계관이자 배경이 되는 대항해시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흔히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에 이르는 200여년의 시간을 대항해시대라고 부르는데요. 이 시기는 유럽이 인류 문명의 중심으로 올라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무역을 중심으로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대서양을 통한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유럽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더 많은 교역품을 위해 경쟁을 펼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남미 지역에 식민지를 만드는 나라들이 생겨났습니다. 과도한 식민지 경쟁은 결국 제국주의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항로가 열리면서 각 국가의 항구는 대서양을 거쳐 인도와 신대륙으로 나가는 선박과 선원으로 붐볐습니다. 당시 유럽 내에 향신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신항로를 거쳐 물건만 가져올 수 있다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양 항해는 막대한 돈과 시간,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선박이 큰 것도 아니고, 의약품이나 식료품 보관이 용이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수중 암초와 충돌해 배가 좌초하는 일도 많았고, 망망대해 바람이 불지 않아 선원 전원이 탈수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홀로 떠도는 배들은 유령선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성공의 꿈에 부푼 바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닻을 올려 대양으로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꿈과 모험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선 당시의 시대상을 간접 경험 할 수 있는데요.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육두구’, ‘메이스’, ‘후추’와 같은 향신료는 유럽 지역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랜 항해를 위해서는 많은 양의 보급품이 필요하고, 먼 바다에는 강력한 해적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선단 레벨을 충분히 올리고 나서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눈물어린 후회를 할 수 있으니 명심하길 바랍니다.
꿈과 모험, 두근거리는 이야기가 가득한 시기는 후대에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법이죠. 조조, 유비, 손권 같은 난세영웅이 난립하던 후한 말 삼국시대가 지금까지도 다양한 콘텐츠로 재해석된 것처럼, 대항해시대는 게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설과 영화에서도 애용되는 단골 소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대항해시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집단들이 있죠. 바다를 누비고 다니던 무법자 해적입니다. 현실에서 해적은 무지막지한 범죄자들입니다만, 당시엔 낭만주의 사조를 타고 대중적 인기를 끈 콘텐츠 중 하나였습니다. 해적들이 어딘가에 숨겨둔 막대한 보물 등은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죠. 이러한 인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해적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외려 해군 세력이 악당으로 그려지는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대항해시대 난립한 해적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중남미 카리브 해(캐리비안) 인근의 모습과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특히 바다의 여신 ‘칼립소’, 대왕 문어 ‘크라켄’ 등 판타지적인 요소도 적절히 가미됐는데요. 당시 뱃사람들이 가진 바다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경외심을 잘 표현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해적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와 그의 라이벌 ‘헥터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분)’는 이 영화의 인기 캐릭터인데요. 이 가운데 바르보사는 지중해에서 악명의 떨치던 바르바로사 형제의 이름을 땄습니다. 동생 히지르는 알제를 거점으로 삼으려는 스페인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약탈했고, 아랍인들은 그를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하이레딘’으로 불렀습니다. 후일 그는 오스만 투르크 황제의 직접 인가도 받아 정식 술탄으로 등극했습니다. 참고로 하이레딘은 게임 ‘대항해시대4’에서 만날 수 있는 막강한 해적 NPC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4편 ‘낯선 조류’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티치 역시 실존했던 전설적인 해적입니다. 티치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에 프랑스 왕국과 스페인의 함선을 공격하는 영국 함대에 승선했지만, 이후 독자 세력을 꾸려 함포 40문을 갖춘 해적선 ‘앤 여왕의 복수’의 선장이 됩니다. 티치는 치렁치렁한 검은 수염을 길렀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름보다 ‘검은수염(Blackbeard)’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718년 영국 해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합니다. 악명이 오죽 높았으면, 영국 해군은 전리품으로 티치의 머리를 돛대에 걸고 다녔다고 합니다.
해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만화도 있죠. 일본 작가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에 ‘원피스’ 역시 대항해시대 당시 활동하던 해적들의 이야기가 잘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원피스의 핵심인물 해적왕 ‘골 D. 로저’는 처형 적전 “잘 찾아봐. 이 세상의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라는 유언을 남기며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대해적시대 열었습니다.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원피스 최고의 장면으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로저의 모티브가 되는 해적은 프랑스 출신의 올리비에 르바쇠르로 추측되는데요. 프랑스 해군에 체포된 르바쇠르른 1730년 7월 7일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기 직전 그는 한 장의 양피지를 꺼내 던지면서 “내 재산은 모두 이 속에 있다. 누구든지 이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죠.
바다, 탐험, 보물, 해적. 보기만 해도 무언가 모험심을 자극하고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단어들입니다. 30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항해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무모하지만 멋진 뱃사람들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동명의 게임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주 바쁜 일정이 많아서 대항해시대 오리진을 진득하게 즐기지 못했는데요. 다가오는 추석 연휴 기간에는 느긋하게 항해를 떠나봐야겠습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