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사냥하는지 모를 새빨간 ‘늑대사냥’ [쿡리뷰]

누가 누굴 사냥하는지 모를 새빨간 ‘늑대사냥’ [쿡리뷰]

기사승인 2022-09-21 06:00:06
영화 ‘늑대사냥’ 포스터

범죄자들의 손과 발을 묶은 수갑이 풀리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하루에 두 끼를 배급받고, 화장실은 한 번만 갈 수 있는 열악한 처지에서 벗어난 범죄자들은 경찰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바다 위 교도소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지옥으로 변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살아남을지 지켜보는 잔혹한 생존 게임이 시작됐다.

영화 ‘늑대사냥’(감독 김홍선)은 불만이 가득한 범죄자들이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호송되는 배에 오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최근 범죄자 이송 과정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고로 이들을 관리하는 경찰들의 신경이 예민하다. 얌전하게 경찰들의 지휘대로 따라가는 것 같던 범죄자들은 계획적인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바다 위를 이동하는 거대한 교도소엔 이들 외에 미스터리한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사방에 피가 쏟아지는 진짜 지옥이 펼쳐진다.

‘늑대사냥’은 언뜻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중반부까지 위험한 범죄자와 경찰들의 갈등을 그린 영화 ‘콘 에어’(감독 사이먼 웨스트)처럼 흘러가던 영화는 어느 순간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극한의 생존게임으로 장르를 바꾼다. 비교적 익숙한 전반부 이야기가 긴장감을 일으키며 예열하는 역할을 했다면, 기어를 바꾼 후반부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끝까지 질주한다. 의도적으로 관객을 속였다는 인상보다, 한계를 모르고 달려가는 본론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처럼 보인다. 센 것과 센 것끼리 부딪혀 우열을 가리는 진부한 이야기가 되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컷

수위가 상당히 높다. 신체가 훼손되고 피가 쏟아지는 걸 숨기지 않는 고어 물에 가깝다. 국내 상업영화 중 가장 잔인한 편에 속하지 않을까. 그저 잔인한 장면을 전시하면서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자랑하거나 즐기는 톤은 아니다.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더 현실처럼 만들어주는 역할을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면에서 비교할 만한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 시리즈가 얼마나 피를 보여주지 않고 찍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죽는다. 처음엔 각자의 죽음에 의미가 있고, 이야기 안에서 기능하는 역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갈수록 영화를 위해 인간을 소모한다는 인상이 강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못 본 척 지나치는 장르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몇몇 죽음엔 나름대로 서사를 부여해 감정 이입을 유도해 의도를 알 수 없게 한다. 또 그 과정들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사냥 당하는 ‘늑대’의 주체가 바뀌는 걸 알려주는 신호처럼 보이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대하는 영화의 시선에 동의할 수 있는지에 따라 ‘늑대사냥’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했다. 제18회 미국 판타스틱 페스트 호러 경쟁 부문과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산세바스티안 호러판타지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받은 본격 장르 영화다. 날 것의 장르 영화를 하고 싶었던 김홍선 감독이 2017년 필리핀으로 도망친 한국인 범죄자 47명을 집단 송환한 기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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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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