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 관악 교정에서 만난 A씨가 이공계열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본인을 고학번이라고 소개한 그는 “급여 차이가 크니까 학문적 호기심보다도 안정을 더 추구하려 하다 보니 과학에 뜻이 없는 한 전문직에 빠지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분야가 비전이 없긴 하다”며 씁쓸해했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
대한민국 이공계를 짊어질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명문인 서울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가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자퇴생이 가장 많은 상위 3개 단과대는 공대(27.7%), 농생대(24.6%), 자연대(13.6%)로 집계됐다.
자퇴생들이 모두 의약계열로 이동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3개 단과대 재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꼭 의대가 아니어도 회계사, 변리사 등 전문직종을 준비하는 동기들이 많다고 학생들은 귀띔했다. 열람실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B씨(공대 3년)는 “(의대를 가려고) 자퇴하는 경우는 드물고 휴학해서 수능을 다시 본다”며 “진로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설령 기업에 간다고 해도 고소득 전문직과 비교하면 너무 뒤처지니까”라고 토로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0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분석자 월 평균 소득은 262.9만원으로 조사됐다. 세전 연봉으로 치면 약 3156만원이다. 학부 졸업자는 월 평균 244.1만원을 벌었고 석사학위 소지자는 월 평균 449.3만원을 벌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이다. 병원을 연 개원의 연봉은 2억9428만원, 봉직의(페이닥터·1억8539만원)도 2억원 가까이 수령하는 걸로 조사됐다.
‘공대=취업깡패’라는 명성도 흐릿해진지 오래다. 2020년 2월 현재 전체 고등교육기관 취업률은 65.1%로 1년 전보다 2.0%p 하락했다. 의약계열(82.1%)을 제외한 나머지 취업률은 50~60%대다. 의약계열 다음으로 높은 공학계열은 67.7%, 자연계열은 62.3%에 불과하다. 두 계열 취업률은 전년대비 각각 2.2%p, 1.6%p 줄었다.
이렇다보니 이공계를 기피하기 보다는 의약계열 선호도가 더 높아서라는 시각도 있었다.
C씨(약대 19학번)는 “편입생들이 매년 다르긴 한데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다. 의대에 가면 더 많다”며 “이공계 기피라기보다 약대는 편입으로 오니까 일단 자연대로 진학하고 편입을 준비 하는 학생이 많다”고 밝혔다. 서울약대 재학생 30%가 3개 단과대로 알려졌다.
유수 대학들은 이공계 우수인재 취업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포항공대⋅울산과기원⋅한양대는 우주 R&D(연구개발) 인재와 기업을 매칭해주는 ‘커리어 페어’를 9월 한 달간 열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