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배우에서 ‘엘리자벳’ 주연까지…이해준의 10년 [쿠키인터뷰]

앙상블 배우에서 ‘엘리자벳’ 주연까지…이해준의 10년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0-20 06:00:07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토드(죽음) 역을 연기하는 배우 이해준. EMK엔터테인먼트

‘특이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25세 청년은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어둡지만 흡인력이 강해 관객이 좋아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동국대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배우 꿈나무는 언젠가 자신도 ‘엘리자벳’ 무대에 서는 날을 상상했다. 그 후 10년. 막연했던 희망은 현실이 됐다. ‘엘리자벳’ 한국 초연 10주년 공연에서 새로운 토드(죽음)로 캐스팅된 배우 이해준의 이야기다.

“평소 우러러본 선배님들과 공연한다는 게 지금도 신기해요.” 최근 서울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 회의실에서 만난 이해준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2013년 뮤지컬 ‘웨딩싱어’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엘리자벳’으로 대극장 무대에 처음 섰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초대 황후인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의 생애를 각색한 ‘엘리자벳’에서 그는 엘리자벳을 탐닉하는 토드를 연기한다. ‘나만이 자유를 줄 수 있다’며 황실 문화에 속박당한 엘리자벳을 유혹한다.

관객에겐 매혹적이지만 배우로서는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가 바로 토드다. 인간도 신도 아닌 존재인데다 사랑과 집착 사이 어딘가의 감정을 연기해야 해서다. 이해준은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까지 토드로 완벽히 분장한 채 오디션 영상을 찍어 보내 역할을 따냈다. EMK엔터테인먼트는 이런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 그와 전속계약도 맺었다. 무대에서 이해준은 목소리에 숨소리를 섞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때론 춤도 추며 토드의 카리스마와 위압감을 표현한다.

이해준 ‘엘리자벳’ 공연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토드는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는 설정이 제일 어려웠어요. 틀에 갇히지 말고 놀아보라는 연출님들 조언을 듣고 나만의 토드를 만들려고 했죠. 인간의 감정으로 토드를 해석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혼란과 궁금증, 사랑과 집착이 뒤섞인 감정과 어긋난 태도로 엘리자벳을 대하려 했죠. 일명 ‘집착 광공’이라고 할까요. 하하. 처음 공연한 날 커튼콜을 마친 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던 기억이 나요. ‘여기서 믿을 건 나밖에 없다. 내가 들인 노력과 겪어온 과정을 믿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공연했어요.”

공연 횟수는 많지 않아도 이해준은 “‘마지막 춤’처럼 유명한 넘버는 기대 이상으로 불러야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생각에 “직장인이 야근하듯” 연습을 이어왔다. “잘하면 돋보이지만 못하면 무덤”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토드의 서사를 납득시키자”는 각오를 다졌다. 초연부터 네 번째로 토드 역을 연기하는 김준수를 비롯해 류정한, 박효신, 신성록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거친 역할이다. 부담이 클 법도 하지만, 이해준은 “다른 사람 말에 흔들리기보다 연습한 시간을 믿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해준. EMK엔터테인먼트

앙상블 배우로 시작해 대극장 주연을 꿰차기까지 10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때 유명해지겠노라는 부푼 꿈을 안고 계약한 소속사와 문제가 생겨 배우의 길을 접을까 고민한 일도 있었다. “30대가 되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주변 친구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는데, 나는 과연 바라던 모습으로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됐어요. 연기 입시생을 가르치면 벌이도 괜찮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더라고요. 배우와 강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의 열정을 다시 들쑤신 건 뮤지컬 ‘킹키부츠’ 오디션이었다. 합격해서가 아니다. 그는 찰리 역에 도전장을 냈다가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배역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고 했다. “연출님이 ‘이렇게까지 성실히 준비해온 배우는 처음이다. 열심히 준비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연기 강사가 돼) 다른 친구들의 꿈을 키워주기에는 제 꿈이 너무 컸어요.” 그렇게 대학로로 돌아간 이해준은 뮤지컬 ‘쓰릴 미’, ‘라흐마니노프’, ‘트레이스 유’, ‘사의 찬미’ 등 2년간 10개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며 바쁘게 지냈다. 이런 자신을 이해준은 “대기만성형 배우”라고 부른다.

“예전엔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달리며 살았어요. 요즘은 저 자신을 되돌아보며 멀리 내다보려고 해요. 배우는 평가받는 직업이잖아요. 그러니 저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야겠더라고요. 지금도 새 작품을 만날 때 단지 내 욕심으로 출연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해낼 수 있는 일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악플이나 선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오래 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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