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치’ 진한새 작가와 인터뷰 후 알게 된 것 [쿠키인터뷰]

‘글리치’ 진한새 작가와 인터뷰 후 알게 된 것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1-02 19:00:02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진한새 작가는 어린 시절 UFO를 봤다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 손을 잡고 있다가 UFO를 봤고, 곧 사라졌다는 아내의 얘기가 사실인지 옥신각신하는 자체가 재밌었다. 지난달 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는 그렇게 출발했다. 아무것도 없이 짧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드라마 형태를 갖춰갔다. 이야기에 맞는 주제 의식도 찾아냈다.

‘글리치’는 넷플릭스 ‘인간수업’으로 데뷔한 진한새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다. ‘인간수업’이 그랬듯, 다양한 이야기와 장르가 뒤섞인 독특한 드라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자친구 시국(이동휘)을 찾는 지효(전여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중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지효와 보라(나나)의 재회, 보라가 속한 UFO 동호회의 활약, UFO를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의 비밀 등 여러 소재가 펼쳐진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진한새 작가에게 ‘글리치’를 시작한 계기부터 처음 떠올린 몇 장면, 드라마에 숨겨진 의미 등을 들었다. 진 작가와 만남에서 알게 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처음엔 저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몰랐어요”

‘글리치’는 짧은 이미지에서 출발한 드라마다. 드라마가 전하는 주제 의식은 나중에 찾아가는 순서였다. 처음엔 작가 본인도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몰랐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후에야 이래서 이런 장면을 떠올렸구나 하고 이해하는 식이었다. 데뷔작인 ‘인간수업’ 때도 비슷했다. 진한새 작가는 “작업할 당시엔 현대 교육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없었다”라며 “다양한 해석이 나오면 이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글리치’ 스틸컷

“고등학생 둘이 옥상에서 만나는 장면, 너무 좋더라고요”

지효와 보라의 관계가 주제 의식보다 더 먼저였다. 인터넷을 하던 진 작가는 우연히 두 명의 여자 고등학생이 옥상에서 만나는 장면을 봤다. 한 명은 날라리고 한 명은 모범생이었다.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남-남, 혹은 남-녀로 성별을 바꾸면, 처음 그 느낌이 사라졌다. 진한새 작가는 “어린 시절 같이 재밌는 놀이를 하다가 찢어지는 이야기에 꽂혔다”라며 “그 이야기 속 감정을 발전시키다 보니 ‘글리치’가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신념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당연한 거라 믿은 무언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큰 사건 보다는 그 경험으로 충격받았다는 감정만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따라가는 신념은 ‘글리치’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노덕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UFO나 사이비 종교는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했다. 진한새 작가는 “처음엔 UFO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신념에 관한 얘기”라며 “(신념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글리치’에서 가장 이입된 장면은…”

진한새 작가는 ‘글리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으로 지효가 상견례 이후 몰래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들었다. 스스로 가장 이입되는 장면이었다. 진 작가는 해당 장면이 “가야 하는 길인 걸 알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며 “30대스러웠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글리치’ 스틸컷

“전여빈 배우, 처음부터 밀었어요”


극 중 지효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은 진한새 작가의 추천이었다. JTBC ‘멜로가 체질’에서 직장 상사에게 야단맞는 장면을 연기한 전여빈에게 꽂혔다. ‘글리치’에서도 지효가 직장 상사에게 야단맞는 장면이 등장한다. 보라를 연기한 배우 나나는 노덕 감독의 추천이었다. 진 작가도 “tvN ‘굿 와이프’에서 나나의 연기가 좋다고 생각했다”라며 “보라 대사 톤을 잡지 못하던 시기에 나나 배우를 처음 봤다. 말투와 나른한 느낌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이시국은 일종의 말장난”

‘글리치’ 속 등장인물들 이름엔 여러 의미가 숨어있다. 지효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이시국은 ‘이 시국에 이시국이 없어졌다’는 일종의 말장난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지효-보라와 적대하는 인물인 좁(김명곤)은 성경에서 따왔다. 신과 문답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붙들려 하는 욥과 동일시 하면 스스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김직진(고창석)의 세례명인 토마스는 성경에서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인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진 작가는 “인물 이름을 지을 때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짓는다”라며 “부르기 쉬워서 보라라고 지었지만 노덕 감독님이 찾아 보라는 의미냐고 물어서 맞다고 했다”고 말했다.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어머니(송지나 작가)는 어떻게 저렇게 많이 쓰셨지”

진한새 작가는 SBS ‘모래시계’, MBC ‘태왕사신기’ 등을 집필한 송지나 작가의 아들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진 작가에게 건축을 권했다. 글쓰는 일도 좋아했던 진 작가는 어머니 슬하에서 보조작가로 드라마 대본을 공부하다가 데뷔하게 됐다. 진 작가는 “결국 드라마 작가도 노동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며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작품을 쓰셨지, 어떻게 26부작을 하셨지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핀트가 어긋난 하이틴 로맨스 하고 싶어요”

‘인간수업’이 공개된 이후 진한새 작가는 성범죄 전문 작가로 알려지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글리치’가 탄생한 배경이다. 진 작가는 “구체적 기획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아이템이 몇 개 있다”라며 “그중에서도 성범죄가 빠진 하이틴 로맨스가 욕심난다”고 귀띔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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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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