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수저’ 황태용(이종원)은 뒤엉킨 인생을 산다. 재벌 2세인 그는 마법의 금수저로 가난한 반 친구 이승천(육성재)과 운명이 뒤바뀐다. 재력은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 부모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던 황태용은 이승천으로 살며 가족애를 처음 느낀다. 행복한 나날 속 가난은 그를 이따금씩 옥죈다. 황태용이면서 황태용의 삶을 부러워하기에 다다른다. 그를 연기한 배우 이종원은 황태용이면서 동시에 이승천이었다. 사실상 1인 2역을 연기한 셈이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에서 만난 이종원은 애틋함이 가득해 보였다. 손에서 대본을 놓을 새도 없었단다. 설정은 복잡하고 연기해야 할 분량은 많았다. 두 사람을 명확히 구분 지어 표현하려면 대본을 정확히 이해해야 했다. 본인이 황태용이면서도 황태용의 이름을 악에 받쳐 부르짖고, ‘내가 황태용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푸념하기도 한다. 이종원은 “머릿속에 수많은 서랍을 만들어 황태용과 이승천을 철저히 분리했다”면서 “부담이 컸지만 시청자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내준 덕에 점차 마음을 놓았다”고 회상했다.
“늘 아쉬운 점이 잔뜩 보였어요. 부족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자책했죠. 어려웠던 만큼 얻은 게 많아요. 여러 감정을 보여주면서 내면이 풍부해지는 걸 느꼈어요. 16회 내내 출연한 것도 기뻤고요. 이게 주연이구나 싶더라고요. 하하.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2:8로 주는 편이지만 이번엔 저를 덜 구박하려 했어요. 태용이의 마음을 치열하게 연구하던 기억이 가득해요.”
모호함의 연속이었다. 이승천이 된 뒤에도 이따금씩 황태용의 본성을 보여줘야 했고, 이승천을 좋아하던 나주희(정채연)와도 호감을 주고받았다. 황태용 역이지만 황태용으로서 설 곳은 좁았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명확한 감정을 보여줘야 했다. 슬픔, 분노, 공포감이 뒤섞인 모습을 표현하며 연기의 참맛을 느꼈다. “이런 연기도 할 줄 아는 배우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생각만으로 노력했어요.”
황태용은 ‘금수저’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황태용은 ‘진짜 황태용’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내던지고 돈이 아닌 가족을 택한다. 성장형 캐릭터와 함께하며 이종원도 성장했다. 부자관계로 호흡한 선배 배우 최원영에게는 여러 가르침을 얻었다. 가족에게 사랑받는 이승천의 모습에선 행복하던 유년기를 반추했다.
“이승천이 된 황태용은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해해요. 그때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듯했어요. 극 중 이승천 가족이 돈을 벌었으니 1인 1닭을 하자며 웃는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저희 집도 다 함께 치킨을 먹는 날이 있었거든요. 한번은 눈물이 잔뜩 나던 때가 있었어요. 본래의 삶을 포기한 (황)태용이가 어머니와 통화하며 김치찌개가 좋다고 하는 장면이에요. 저희 엄마가 끓여주시는 김치찌개도 정말 맛있거든요. 엄마 생각이 나니까 저도 모르게 엉엉 울었어요. ‘금수저’에 캐스팅됐을 때 기뻐하던 부모님 생각도 나고…. 감회가 정말 새로웠어요.”
주연 배우로 발돋움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동안 출연 작품만 20편에 가깝다.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이었다. 데뷔 초 웹드라마 ‘고, 백 다이어리’로 순수함을 그려냈던 그는 MBC ‘엑스엑스’로 섬세함을, MBC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냉혹함을 표현하며 배우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로는 인지도를 키웠다. 경험은 그의 20대를 지탱하는 단단한 지반이다. 이종원은 지난 9월 제작발표회에서 언급했던 ‘천의 얼굴’ 수식어를 이야기하며 “이번에 두 얼굴을 보여줬으니 이제 998개를 더 보여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른을 앞둔 그는 성숙한 배우로 나아가길 꿈꾼다.
“더욱더 다양한 캐릭터와 만나고 싶어요. 지금껏 그래 왔듯, 흥미가 생긴다면 무엇이든 도전할 거예요. 제게 연기란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이에요. 캐릭터와 비슷한 면을 내면에서 찾아 몸집을 키워왔거든요. 앞으로도 연기를 통해 저를 더 알아가고 싶어요. 뭐든 가리지 않을 거예요. 누아르, 로맨틱 코미디, 시대물 혹은 악역…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천의 얼굴’을 채우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죠?”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