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논쟁…무엇이 문제길래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논쟁…무엇이 문제길래

22일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 사용’ 허가 판결
한의계 “진료 정확도 높여”vs의료계 “오진단 가능성 커”
제도화·보험 적용 전까지 ‘진단 보조’로서만 사용 가능

기사승인 2022-12-27 07:00:15
초음파 사진.   픽사베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한의계는 정확하고 안전한 시술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오진 위험성 우려가 높다며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12명의 대법관 중 10명이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찬성표(한의사 진단 의료기기 사용)를 던진 것이다. 이로써 한의사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받지 않게 됐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적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한의과 대학의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교육제도가 있는 만큼 위해도가 적으며 △진단용 기기와 같은 과학기술은 의사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질로 보긴 어렵다는 사유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는 한의사 A씨에게 한의사 면허 범위 이외 의료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벌금 80만원을 내렸던 1심과 원심(2심)의 선고와는 정반대 결과다. 당시 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사용할 경우, 진단 과정에서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판독하지 못해 신체나 생명의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해 홍주의 후보가 제4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홍주의 후보는 공략으로 ‘X선 등 현대 의료기기 한의사 사용 문제 해결’을 내걸었다. 

한의사가 초음파 사용한다면…안전성 두고 설왕설래

초음파 검사는 다양한 부위(질환)의 진단이 가능하다. 또한 값이 싸고 장비 이동이 비교적 쉽게 가능하며 방사선이 없어 피폭 위험성도 낮다. 한의계는 이러한 초음파 진단장비를 통해 정확하고 안전한 시술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침술을 위한 전용 초음파 진단장비도 개발될 정도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맥만 짚고 얼굴색을 보는 한의사들의 전통적인 진단법에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초음파를 사용하면 더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의사들도 초음파 기기 활용을 원하고 있었다”며 “초음파는 오진단을 피하고 정확한 한의학적 진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도구 중 하나다. 국민 건강증진과 진료선택권을 보장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초음파 진단법은 이미 국내 한의대에서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다. 국내에 최초로 초음파가 도입됐을 때부터 한의계와 의료계 모두 이에 대해 교육받고 사용해왔다. 다만 중간에 의사단체가 초음파 장비 업체와 담합을 하며 한의계의 초음파 사용을 막았고 이후 활용에 한계가 생긴 것”이라며 “또한 한의계에도 대한한의영상학회가 존재하며 현대 의료기기에 대한 연구와 역량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안전성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했다.

반면 의료계는 진단 행위보다는 진단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다. 초음파 진단기기가 인체 위험성이 없더라도 오진단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협에 따르면 이번 판결의 시작은 한 한의원에서 환자에게 68번의 초음파를 시행했지만 진행 중인 자궁내막암을 진단하지 못해 치료가 늦어진 사례에서 비롯됐다. 

이에 26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대법원 앞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날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삭발까지 감행하며 이번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회장은 “초음파 장비 자체의 위험도는 낮을지라도 초음파를 이용한 진단 과정에서 오진이 발생한다면 환자는 물론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대법원 판단은 매우 잘못됐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발생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즉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표명했다.

조영기 대한방사선협회 회장은 “의료법은 의료인 면허제도를 통해 의료행위를 엄격한 조건하에 의료인에게만 허용하고 무면허자가 이를 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의료인도 각 면허된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며 “현재 허가된 의료용 초음파 기기가 인체에 유해성이 적으므로 전체 초음파 진단기기를 누구나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26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대법원 앞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감행했다.    대한의사협회

한의원 초음파 급여는 논외…의료기기 사용 범위 확대도 미지수

이번 판결에 따라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은 허용됐지만,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정해진 바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한의원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한의사는 초음파를 시행하더라도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없으며, 단순히 연구 및 진단보조용으로만 사용 가능하다. 한의협 측에 따르면 약 100곳이 넘는 한의원에서 이미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의협 측은 “사용 허가가 떨어졌으니 보다 많은 한의원에서 초음파 기기를 도입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현대 의료기기를 진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 국민들에게 최상의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제도 마련에도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의협 측은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현재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불법은 아니지만 보험 등재 등 논란의 여지는 많다. 등재가 되지 않는다면 비급여로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 된다”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한의계는 이번 법원 판결을 토대로 타 의료기기 사용 확대도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의계는 오래전부터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에 대해 목소리 높여왔다. 특히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취임한 제44대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도 공약으로 “올해에는 꼭 초음파 기기 급여화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지금까지 한의계가 법적 소송을 통해 허용 받은 의료기기는 이번 초음파 진단기기를 포함해 체외충격파, 온·냉 경락요법, 적외선 치료기,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등이 있다. 반면 컴퓨터 단층촬영(CT), X선 골밀도 측정기, 필러, 카복시 치료기기 등 ‘방사선 피폭 위험성’이 있거나 ‘침습성’ 진단기기 제품은 의료법 상 한의사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새로운 시각에 따라 한의사 사용 관련 법적 소송에 놓인 다른 의료기기도 허용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물론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있는 만큼 정부가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실하게 마련해줄 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 대법원의 판결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 수준에 그쳐있다. 다양한 질환에 적용되는 초음파를 어느 적응증까지 허용할 것인지, 법적 소송 중인 다른 의료기기에 대한 승소 여부는 어떻게 결론이 날 건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이해 관계자의 충분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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