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당신의 최애는 누구인가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기사승인 2023-01-11 07:00:16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 에스엠지홀딩스(주)

강백호냐 서태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송태섭 대 정대만, 세기의 대결이다.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만화 ‘슬램덩크’ 시리즈를 사랑했던 이들의 잠든 추억을 깨웠다. 모름지기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결점과 눈앞에 놓인 허들 때문에 더 아름다워지는 법.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슬램덩크’ 소년들의 성장사를 쿠키뉴스 대중문화 기자들이 짚어봤다. 자, ‘과몰입’ 준비하시고… 선수 입장!

북산고 농구부 주장이자 센터 채치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의심하지 말길, 채치수는 채치수니까

어떤 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북산고 농구부 주장 채치수에게 전국제패라는 꿈이 그랬다. 채치수는 농구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전국제패를 꿈꿨으나 그것은 언제나 먼 꿈이었다. 꿈에 그리던 적수 산왕공고를 맞닥뜨린 날, 어쩐 일인지 채치수는 비틀댄다. 육중한 체격과 괴력에 가까운 힘, 날렵한 몸짓을 가진 상대 팀 센터 신현철을 자신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의심해서다. 센터 대결에서 이겨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은 채치수를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신현철은 신현철, 채치수는 채치수다. “진흙투성이가 돼라”는 라이벌 변덕규의 말에 비로소 채치수는 각성한다. 신현철의 화려한 기술을 따라잡으려는 대신 조력자로서 자기 역할을 되새긴다. “난 신현철에게 지고 있다. 하지만 북산은 지지 않는다.” 채치수가 이렇게 결의를 다지는 순간, 그의 꿈은 전국제패가 아닌 북산고 농구부 자체가 된다. 더는 그를 짓누르지 않을 꿈이다. 어쩌면 그의 농구는 전에 없이 즐거워졌을지도 모른다.

북산고 농구부 슈팅 가드 정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정대만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단발머리 사내가 이렇게 말하며 무너지는 순간, 그의 모든 잘못이 용서받았다. 딱 한 사람, 정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로부터. 무릎 부상으로 농구를 멈춘 2년. 동갑내기 채치수가 주장으로 성장하고, 이름조차 잊은 선수가 하루 500개씩 3점 슛 연습을 해 다크호스로 떠오른 그 시간 동안 정대만은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중학 MVP라는 영광도 흐린 기록으로만 남았다. 아무리 자책해도 과거를 돌이킬 순 없다. 타고난 기량만으로 축적된 노력을 이길 수도 없다. 그래서 정대만은 모두가 용서한 과거의 자신과 계속해서 싸운다. 그 결과 그는 집념을 얻는다. 몸을 가누기는커녕, 자기 팀이 공격인지 수비인지 모를 만큼 지쳤어도 “내게서 3점 슛을 빼앗아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며 자세를 가다듬는 집념을. 혼신을 다한 슛은 패배의 전운을 걷어 내고 승리의 흐름을 가져온다. 정대만은 그런 남자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안한수 감독)라고 믿는 남자, 그래서 포기를 모르는 남자, 한 마디로 불꽃 남자.

북산고 농구부 포인트 가드 송태섭.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송태섭, 중요한 건 넘어진 다음

송태섭에게 노력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168㎝의 작은 키. 언제나 자신보다 10㎝ 이상 큰 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에게 노력은 유일한 돌파구였을지도 모른다. 거구를 타고난 채치수와 강백호가 더 높은 곳에 도달하려 점프한다면, 단신인 송태섭은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발견해 뚫고 나아가야 한다. 헤아리기 어려운 노력과 실패 끝에 미약한 가능성을 그러쥐는 송태섭의 경기는 다른 어떤 선수의 플레이보다 더 우리 삶과 닮았다. 해남대 부속고의 이정환, 상양고 김수겸, 산왕공고 이명헌 등 유독 강한 선수와 포지션이 같아 자신조차 “상대는 언제나 괴물 같은 놈들”이라고 읊조리지만, 송태섭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그는 수없이 넘어져 왔고 앞으로도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그의 형 송준섭이 말했듯 “중요한 건 넘어진 다음”이다. 상대를 돌파해 골을 옮긴 경험만큼이나 상대에게 가로막혀 밀리고 넘어진 경험 역시 송태섭을 성장시켰다. 실패는 그래서 영원히 실패로만 머물지 않는다.

북산고 농구부 포워드 서태웅.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자만하지 않는 서태웅의 자신감

서태웅은 농구밖에 모른다. 뛰어난 재능에 피나는 노력까지 어우러지니 농구선수로서는 흠잡을 데가 없다. 아니, 사실 흠잡을 게 아주 없진 않다. 농구밖에 모르는 그는 화합하는 법 역시 모른다. 붙임성, 사교성, 사회성과는 영 거리가 멀다. 무심한 서태웅을 움직이게 하는 건 농구에 대한 열정이다.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하다. 원천은 노력이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같은 슛을 몇 백만 번이나 넣어봤다”며 자유투를 성공시킬 정도다. 스스로 실력을 믿는 서태웅은 배경에 기대지 않는다. 농구 명문고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단순히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약팀인 북산고를 택한다. 그곳에서 서태웅은 팀플레이에 눈을 뜨며 새로운 성장점과 마주한다. 또 한 가지, 서태웅을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얼굴이다. 농구로 얼굴값을 톡톡히 하는 남자. 잘생긴 얼굴이 다가 아닌 서태웅의 농구는 재미있다. 묵묵히 노력하는, 잘생긴 천재의 성장은 진정으로 흥미롭다.

북산고 농구부 포워드 강백호.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강백호의 꺾이지 않는 마음

“농구 좋아하세요?” “아주 좋아합니다. 난 스포츠맨이니까요!” 이상형의 질문에 이어진 단순 무식한 대답. 강백호의 농구 인생은 얼렁뚱땅 시작됐다. 채소연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불순한 의도는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점차 방향을 달리 한다. 강백호는 스포츠 만화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지만 코트 위에서는 어설픈 초보다. 림이 아닌 사람 머리에 덩크슛을 하고, 규칙을 몰라 심판에게 저지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 하나로 꿋꿋이 일어선다. 천재라는 자만은 원동력이면서 때때로 그의 세계를 한정한다. 부족한 실력을 외면하던 그는 경험을 쌒으며 달라진다. 강백호는 2만개의 골을 넣는 맹훈련 끝에 마침내 깨닫는다. “왼손은 거들뿐”이라고. 농구화도 없던 보결 선수는 어엿한 주전으로, 히든카드에서 다크호스로 거듭난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농구를 향한 진심 어린 고백은 강백호의 성장을 더욱더 기대케 한다.

북산고 농구부 스몰 포워드이자 식스맨 권준호.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캡처

노력은 권준호를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운동의 세계는 매정하다. 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를 이길 수 없다. 천재들이 판치는 냉혹한 코트에서 권준호는 분명 범재다. 식스맨(후보 선수)인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능남고 유명호 감독은 북산고의 선수 기근을 지적하며 작전에서 권준호를 논외로 친다. 권준호는 모두의 무시 속 3점 슛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끈다. 꾸준한 노력을 묵묵히 증명한 셈이다. “저 녀석도 3년 동안 열심히 해왔다. 깔봐선 안 됐는데.” 유명호 감독의 자책은 권준호로 대표된 범재들의 마음에 찡한 울림으로 가닿는다. 천재보다 범재가 많은 세상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선수가 노력으로 일군 극적인 순간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노력만으로 천재를 이길 수 없다 해도, 노력이 범재를 배신하는 일은 없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권준호처럼 멋진 3점 슛을 던질 기회가 온다. ‘안경 선배’ 권준호의 노력은 그래서 더 값지다.

이은호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김예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