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아할 모든 것 ‘유령’ [설 연휴 골라볼까]

당신이 좋아할 모든 것 ‘유령’ [설 연휴 골라볼까]

기사승인 2023-01-17 07:00:22
영화 ‘유령’ 포스터. CJ ENM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은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숨으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 사이 긴장감, 아름다운 미장센, 화려한 액션과 항일운동이라는 뜨거운 소개까지 다양한 취향을 두루 충족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배경은 1930년대 조선. 항일조직 흑색단은 조선총독부 신임 총독을 암살하려 스파이 유령을 투입한다. 그를 뒤쫓는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악랄하고 집요하다. 조선총독부 통신과 직원 박차경(이하늬)과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박소담) 등 유령으로 의심되는 다섯 용의자를 외딴 호텔로 부른다. 이곳을 살아서 나가고 싶거든 하루 안에 유령이 누군지 색출하라.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협력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치밀함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닮았다.

‘유령’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분된다. 첩보물과 액션물을 합친 복합 장르다. 유령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마무리되는 원작 소설 ‘풍성’과 달리, 영화는 시작부터 누가 유령인지 밝힌다. 원작이 유령을 둘러싼 궁금증으로 독자를 붙든다면, 영화는 캐릭터들 사이 심리전으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호텔에 갇힌 다섯 명은 각기 다른 동력으로 움직인다. 누군가는 사명, 누군가는 적개심, 누군가는 애정, 또 누군가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거나 들춘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유령을 제외한 모든 이를 의심하게 된다.

‘유령’ 스틸. CJ ENM

차갑고 정적이던 분위기는 반전과 함께 돌연 솟구친다. 심리전 대신 총격전과 육탄전이 펼쳐진다. 위협적일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던 호텔은 순식간에 축축하고 질척이는 전장으로 변한다. 인물들도 저마다 솔직해진다. 누군가의 과거, 누군가의 혈통, 누군가의 콤플렉스가 까발려진다. 숨죽이던 관객들은 이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첩보물과 액션물을 연결하는 방식이 과감하다. 경보기의 붉은 색이 호텔을 뒤덮어 관객을 압도하면, 긴박하고 역동적인 액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캐릭터 영화로 불리면 좋겠다”는 이해영 감독 바람처럼,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개성 있고 매력적이다. 차경을 맡아 극을 이끄는 배우 이하늬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지치고 슬픈 표정과 낮은 음성으로 전체 정서를 다진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으로 좌천된 쥰지 역의 설경구는 무게를 더한다. 쥰지가 자학하듯 연설하는 장면은 연기파 배우 설경구의 명성을 실감하게 한다. 박소담이 연기한 유리코는 ‘유령’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을 인물이다. 천 계장 역의 서현우는 사랑스럽고, 박해수는 극 중 인물뿐 아니라 관객까지 위압한다. 초반에 짧게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이솜마저 존재감이 상당하다.

아름답고 상징적인 미장센과 여성 배우들이 펼치는 대담한 전투, 공백이 많아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관계가 젊은 관객에게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맨스 장면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키스 갈겨!’를 외칠 관객이 많겠다. 항일 운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마땅히 지녀야 할 감동과 역동적인 액션은 중장년 관객에게도 높은 점수를 딸 만하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명절을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만족할 영화다. 가족과 함께 보거나 친구끼리 보기에도 적합하다. 오는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3분.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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