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해서 아름답고, 황홀해서 위태로운 ‘바빌론’ [쿡리뷰]

화려해서 아름답고, 황홀해서 위태로운 ‘바빌론’ [쿡리뷰]

기사승인 2023-01-28 13:00:02
영화 ‘바빌론’ 포스터

음악과 사랑, 영화가 공존한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전작 ‘위플래시’에서 음악, ‘라라랜드’에서 로맨스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이번엔 영화다. ‘바빌론’은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데 188분을 통째로 바친다.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정신없이 매혹한다.

‘바빌론’(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지난 1930년대 미국 LA 할리우드에서 꿈을 갖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인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와 영화배우로 데뷔해 스타가 될 거라 확신하는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멕시코에서 넘어와 영화와 관련된 어떤 일이든 하고 싶어 하는 청년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가 한 파티에서 만나 인연을 맺는다. 사막에서 세트를 짓고 직접 쓴 자막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던 무성영화의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기, 이들은 소리를 함께 들려주는 유성영화로 바뀌는 영화산업의 변화를 목격한다. 매니는 넬리와 함께 새로운 시대에도 영화로 성공하기 위해 애쓰지만 좀처럼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인물 한 걸음 뒤에서 세 명의 주인공을 지켜보는 이야기에 가깝다. 때론 실없는 농담이 이어지고, 갑자기 사건이 벌어져 맥락을 끊기도 한다. ‘바빌론’은 인물과 이야기 하나하나를 조명하는 대신, 여러 인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에 집중한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들이 살아간 시간과 머문 공간, 그들이 사라져도 존재하는 건 모두 영화다. 대체 영화가 뭐기에 그러냐는 질문에 대한 지루한 대답을 역동적이고 황홀한 이야기로 바꿔 들려준다. 2시간으론 부족했는지 러닝타임 3시간을 넘긴다.

영화 ‘바빌론’ 스틸컷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재미와는 다르다. 일부러 이입을 방해하는 것처럼,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신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국내 관객이 공감하긴 더 어렵다. 1930년대 LA란 시간과 공간이 모두 멀다. 할리우드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해도도 문제다.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보를 하나씩 받아들이는 호흡은 이미 아는 걸 전제로 끌고 가는 영화의 호흡과 어긋난다. 반대로 ‘라라랜드’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익숙한 음악과 플롯은 영화를 가깝게 당긴다. 밀고 당기는 호흡에 지칠 수도,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깊게 빠질 수도 있다.

매력적인 음악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관을 찾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음악을 쓴 것 같지 않다. 음악에서 이야기가 탄생한 것 같다. 쉴 새 없이 귓가를 때리는 재즈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영화의 메시지와 정서가 느껴진다. 특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금빛의 흥겨운 초반부 파티 장면이 압권이다.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는 성대한 축제 공연 같기도 하고, 영화에 진입하기 전 불순한 기운을 씻어내는 한판의 굿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전통적인 20년대 재즈뿐 아니라 쿠바, 멕시코, 중국, 중동, 하와이, 트리니다드, 그리스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음악, 그리고 아방가르드한 심포니, 아프리칸 스타일 퍼커션, 이탈리아의 오페라, 1920년대에 발명된 전자악기 테레민(Theremin)까지 연주에 활용했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로 역대 최연소 감독상을 받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바빌론’을 위해 15년 동안 연구하고 세계관을 구축했다. “어떤 예술의 한 형태와 그 산업이 처음 형성되던 초창기의 일들, 이들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당대의 사진, 영상, 문헌 등을 조사했다. 그렇게 완성한 자료만 100페이지에 달한다.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선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오는 3월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의상상, 음악상, 미술상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다.

청소년 관람 불가. 다음달 1일 개봉.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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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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