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움직였다, 휠체어 좌석이 달라졌다

팬들이 움직였다, 휠체어 좌석이 달라졌다

기사승인 2023-02-01 18:47:06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가 휠체어석 운영 방침을 변경하자 기뻐하는 그룹 세븐틴 팬들 반응. 트위터 캡처

그룹 세븐틴 팬미팅 예매 페이지가 열린 지난달 30일. 트위터에선 ‘휠체어석’(휠체어가 들어가는 좌석)이 실시간 트렌드로 등장했다. 세븐틴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가 전화 예매로 휠체어석을 구매할 수 있게 공지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팬들은 “휠체어석을 위해 싸워준 캐럿(세븐틴 팬덤) 여러분 감사하다”, “목소리를 내야 세상이 바뀐다”, “이렇게 하나씩 고치자”라며 기뻐했다. 무슨 일일까.

뒷얘기는 이렇다. 과거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는 콘서트나 팬미팅에서 휠체어석 예매 창구를 따로 운영하지 않았다. 좌석 배치도에 휠체어석 위치가 표기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은 먼저 일반 좌석을 구매한 뒤 현장에서 휠체어석으로 안내받아야 했다. 공연장 내 휠체어 이동을 도울 활동 지원사가 공연장에 같이 입장하려면, 그 역시 일반 예매로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전화 예매로 휠체어석과 활동 지원사 좌석을 구매할 수 있게 한 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대형 기획사와는 사뭇 다른 방침이었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가 2년 넘게 고수한 휠체어석 예매 방식을 바꾼 배경엔 팬덤의 집단 움직임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팬들은 지난해 6월 세븐틴 콘서트를 앞두고 소속사에 강력히 항의했다. 소속사와 예매처의 모호한 휠체어석 운영 방침 때문에 콘서트 관람을 포기한 팬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휠체어석을 예매하려던 A씨는 당시 쿠키뉴스에 “기획사가 처음부터 휠체어석 운영 방침을 마련하지 않은 채 티켓을 오픈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했다. A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인을 대신해 예매처에 휠체어석 예매 방식과 동반인 입장 가능 여부 등을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일단 일반 예매로 티켓을 구매하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참고 기사: “아이돌 팬이고요, 휠체어 탑니다. 공연 보고 싶습니다”)

그룹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참여한 수어 통역사. 김이나 인스타그램 캡처

장애인 인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K팝 산업도 더디게나마 바뀌고 있다. 한 가요 기획사는 지난해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에 휠체어석 운영 방침을 상의했다. 이 기획사 관계자는 1일 쿠키뉴스에 “공연 때마다 휠체어석을 마련한다. 휠체어석은 일반 예매와 별도로 구매할 수 있게 하고, 동반인도 함께 예매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해 시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하이브는 지난해 3월 열린 그룹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했다. ‘농 아미’(수어를 제1언어로 쓰는 방탄소년단 팬)인 안정선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 대표의 끈질긴 요구 덕분이었다. 그룹 하이라이트도 같은 해 5월 연 콘서트에서 수어 통역을 지원했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가 휠체어석 예매 방식을 바꾼 일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장애인 관객에게 공연장은 여전히 문턱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장애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예매 방식이 다르지만 이런 사정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령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으나 활동 지원사가 필요한 장애인 관객의 경우, 일반 예매로 티켓 두 장을 구해야 한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세븐틴 팬미팅 예매 페이지에 “휠체어석 관객에게는 별도 현장 안내 및 이동 지원이 진행된다”고 알렸지만,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 관객의 활동 지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공연장 통솔도 문제라고 했다. 홍 이사장은 “기획사나 예매처가 직접 공연 현장을 지휘하지 않는다. 장애인 관객은 현장에 편의시설이나 보조 도구 등이 마련됐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현장 스태프들도 장애인 관객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 공연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장애인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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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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