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관객 없으면 정산 0원?” 홍대 클럽에 무슨 일이

“내 관객 없으면 정산 0원?” 홍대 클럽에 무슨 일이

기사승인 2023-02-03 09:00:07
서울 홍대 인근 소규모 공연장에서 열린 음악 공연.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박효상 기사

지난달 6일 소규모 공연장이 모인 서울 창전동 거리. 근처 클럽에서 공연을 마친 싱어송라이터 해파는 떨어지는 진눈깨비를 보며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했다. 공연 티켓 가격은 3만3000원. 세금을 제한 뒤 공연을 기획한 클럽, 함께 공연한 다른 가수들과 수익을 나누면 티켓 한 장당 5000원꼴로 받겠다는 계산이 섰다.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그는 15분을 걸어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어쩌면 다행이었을까. 해파는 이날 공연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데 쓴 비용도 보전받지 못했다. “버스 타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택시비는 안 썼으니까….” 2일 수화기 너머로 들린 해파의 웃음소리가 씁쓸했다.

해파가 공연 출연료를 받지 못한 건 일명 ‘카운팅’이라고 불리는 출연료 정산 방식 때문이다. 여러 뮤지션이 합동 공연을 하면 입장하는 관객에게 응원하는 가수를 고르게 한 뒤, 득표수에 따라 수익금을 분배하는 구조다. 특정 가수를 언급한 관객이 없거나 그 수가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해당 가수는 공연 수익을 나눠 받지 못한다. 해파는 “그동안 카운팅으로 정산하는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공연은 정산 방식을 따로 안내받지 않아 다른 출연자와 같은 비율로 분배받는다고 생각했다”면서 “시간이 지나도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 클럽 측에 문의하니 ‘해파를 보러 왔다’고 응원한 관객이 없어 지급할 돈이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클럽 측은 이후 해파에게 ‘정산 방식을 사전에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홍대 인근 라이브 클럽이 기획한 합동 공연 예매 페이지. 관객에게 응원하는 뮤지션을 선택하게 한다. 예매페이지 캡처

음악계에 따르면 카운팅은 인디 공연계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에는 공연장 측이 직접 기획·섭외하는 공연보다 장소만 빌려주는 대관 공연이 늘어나는 추세라 카운팅 정산도 이전보다 줄었다”면서도 “특정 공연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파도 학창시절 홍대 인근 소규모 공연장에서 ‘누구를 보러 왔느냐’는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게 정산을 위한 절차였다는 것을 십수 년 만에 알았다. 관객으로서 배신감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 공연장 측은 예매 페이지에 ‘응원하는 뮤지션을 선택해달라’는 항목을 달아놓기도 했다. 해파의 사연이 지난달 31일 SNS에서 퍼지자 누리꾼들은 ‘관객과 아티스트를 모두 모욕하는 처사’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카운팅이 문제가 되는 건 공연 기획에 따르는 리스크를 출연자에게 떠넘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뮤지션들은 관객 응답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지만, 정작 여러 뮤지션을 한 데 묶어 공연을 기획한 클럽 혹은 기획자 쪽은 티켓 수입의 일정 비율을 가져간다. 이 때문에 일부 가수와 음악 레이블은 카운팅 공연에 출연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기도 한다. 음악레이블 영기프티드앤왝(이하 영기획)도 그중 하나다. 하박국 영기획 대표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응원하는 관객 수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카운팅으로 정산하는 공연 섭외는 거절하고 있다”며 “아티스트를 존중하고 공동체 의식을 나누자는 회사 방침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인지도가 없는 아티스트는 무대에 서는 것만도 감지덕지로 여길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연이라는 노동을 했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카운팅은 음악가의 자존감을 해칠 수 있는 방식”이라고 경고한다. 예술인을 인기순으로 줄 세우고 제로섬 게임을 시켜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관객 수에 따라 보수를 주는 것은 뮤지션을 존중하지 않고, 함께 공연을 꾸리는 뮤지션끼리도 서로를 경쟁자로 만드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해파는 “(카운팅은) 사람을 옹졸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는 “액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금액을 받아도 동등 분배과 카운팅 분배는 다른 느낌”이라며 “카운팅 정산에선 얼굴을 아는 관객을 보면서도 ‘저 사람은 누구를 응원한다고 답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함께 공연하는 뮤지션은 물론, 뮤지션과 관객의 관계도 왜곡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일로 관객이 인디 공연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해파는 “여러 가수가 출연하는 기획 공연은 새로운 음악과 팀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많은 분이 공연장을 찾아 그런 재미를 느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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