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쿠키뉴스가 찾은 이태원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오후가 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기자가 기억하는 이태원의 예전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태원 삼거리 앞 오가는 자동차들의 소음은 이를 더욱 대비시켰다.
이날 현장에 방문해서 느끼게 된 건 남은 자들은 단순히 피해자들의 지인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장사를 해오던 상인들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해밀톤호텔 가벽에 설치된 추모의벽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이제 곧 100일이라고 하던데 여전히 그날의 비극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분노를 표할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으니 속으로 앓고만 있다”고 말했다.무엇보다 임대료 부담을 느끼는 상인들이 많았다. 참사 전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면서 이태원 방문객과 함께 오른 월세는 사고 이후 상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빈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임대문의’ 스티커와 리모델링 작업 중인 철거 인력은 이를 방증했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침체의 그림자는 사고가 난 이태원1동은 물론 녹사평역 등 인근 지역까지 번져있었다. 맞은 편 상권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은 “사고 이후 많은 분들이 유흥을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하길 꺼려하다 보니까 매출에 타격이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출이 안 받쳐주다 보니까 높은 임대료를 비롯해 물가 상승을 버티기 버거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피해에 대한 특별 지원대책을 내놨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용산구는 재해 중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 이태원 상권 회복자금, 긴급 중소기업 육성기금 등으로 지난 1월 17일까지 약 109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상인들을 입을 모아 말했다. 한 상인은 “매출이 사고 전과 대비해 말도 안되게 줄었다. 가게를 내놔도 나가지도 않는다”며 “지원금을 받았지만 이로써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지원은 감사한 일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시민들은 참사 추모공간을 제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동네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실제 그동안 참사 추모시설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은 주민과 상인의 반대를 이유로 반대해 왔다.
세월호 참사 추모시설만 봐도 그렇다. ‘4.16 생명안전공원(가칭)’은 참사 5년 만에야 건립이 확정됐다. 학생들의 교실을 재현한 '4·16 기억교실'이 있는 '4·16민주시민교육원'도 부지 선정 문제로 2020년에야 개원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박모씨(남, 43)는 “상권이 다시 활기를 띄기 위해서는 결국 젊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물론 이곳에서의 아픔을 겪은 동세대의 친구들에게 이태원 방문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정부는 물론 각 계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꼭 사고 지역이 아니더라도 근처 공간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해당 공간에서 이태원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슬픔을 표할 수 있어야 사회가 나아갈 수 있다”며 “잊자는 게 아니다. 기억하고 이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노력의 일환 중 하나로 예술계에서는 오는 4∼5일 이태원 일대 클럽에서 '렛 데어 비 러브, 이태원!' 행사가 열린다. 이날 현장에는 관련 포스터들이 여러 가게 벽면에 붙어 있었다. 행사는 지자체 지원 없이 100% 민간인의 힘으로 마련한 캠페인이다. 행사 프로그램은 음악 공연과 모금 행사, 예술작품 플리마켓(벼룩시장)으로 꾸려진다. 수익금 전액은 기부 단체와 피해자분들에게 전달된다.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당장 내일부터 행사가 시작되는데 물론 예전만큼의 방문객들을 기대하진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려 노력하다 보면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바랐다.
지난해 최대 유행어 중 하나는 단연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였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낸 국가대표팀이 펼쳐든 태극기 속 해당 문구는 전 국민의 마음속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각인시켰다. 그 희망 안에는 비극을 딛고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다. 사고 100일을 맞이한 이태원에 다시 한 번 ‘중꺾마’의 힘이 필요해 보인다. 다 함께 부르는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으니까.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