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7 18:14:31

화마가 휩쓸고 간 구룡마을 가보니 [쿠키포토]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큰불이 났다. 3시간 가까이 타오른 불길은 약 820평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약 60명 주민이 터전을 잃었다. 화재 이후 약 한 달째인 17일 쿠키뉴스가 찾은 구룡마을은 전혀 복구되지 못한 채 화마가 할퀴고 간 상흔을 여전히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구룡마을 입구부터 화재가 발생한 4구역으로 가는 길목마다 화재의 후유증으로 남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무 합판과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진 집들은 좁은 골목을 빼곡히 채워 여전히 화재에 취약한 모습이었다.  키가 작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지나는 상수도관은 불안하게 연결돼 길 곳곳에 물방울이 떨어 뜨렸고, 화재 구역의 지 구청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마련한 공공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생긴 빈집도 곳곳에 보였다.  화재가 발생한 4구역은 화재가 난지 한 달가량이 됐지만 어떠한 복구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겨우내 주민들이 가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모아놓은 연탄은 써보지도 못한 채 나뒹굴어 있었고 타버린 사진첩은 이곳이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삶의 터전이었다는 걸 알렸다.   구룡마을 주민 A(71)씨는 잿더미가 된 동네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내 그리고 지금은 결혼한 자녀와의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A씨의 집은 화마에 무너졌다. 20일이면 이재민들은 지자체에서 임시 거주시설로 지원하고 있는 호텔에서 나와야 한다.  이재민들의 선택지는 사실상 두 가지다. 호텔에서 나와 SH가 정한 임대주택으로 이동하거나 천막에서 지내는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화재 구역에 대한 복구는 더딘 상황이다. 주민들은 화재지역 복구에 대해 “(지자체에서) 얘기가 없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시는 구룡마을을 공영개발하기로 결단을 내린 상황이다. 30년째 무허가 판자촌의 모습을 한 구룡마을은 부지 규모만 26만4500㎡에 달해 꾸준히 개발 압박이 있었다. 1990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오다가 2011년 공영개발 계획이 마련됐지만 관련 주체 간 갈등으로 사업이 오랜 시간 표류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0일 화재 현장을 찾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재개발 사업을 언급했고, 김헌동 SH 사장도 “구룡마을 재개발 사업은 빠르게 추진될 것”이라고 발언하며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시는 조만간 토지보상 공고에 돌입할 예정이다. 일부 토지주는 공시가격이 아니라 길 건너 주변 아파트 단지 땅값 시세에 준한 보상을 원하지만 SH공사는 감정평가에 따른 공시가격 기준으로 보상 절차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보상과 개발방식을 두고 주민들과 토지주, 시와 강남구 간 견해가 충돌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H가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구룡마을에는 총 1107가구가 있다. 전입신고가 되지 않은 가구까지 포함하면 약 2000가구가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입신고 등 근거가 있어야 보상이 가능하다. 전입신고가 된 1107가구에 대해서는 임대 아파트와 임대료 40% 할인, 현물 이주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형택 기자 taek2@kukinews.com 글=임지혜 기자 사진=임형택 기자
기사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