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대신 책 보세요” AI 훈수가 바꾼 휴일 [챗GPT 열풍]

“휴대전화 대신 책 보세요” AI 훈수가 바꾼 휴일 [챗GPT 열풍]

기사승인 2023-02-28 06:05:01
챗GPT가 제안하는 ‘완벽한 휴일’ 일과에 따라 하루를 지냈다.   이승렬 디자이너

계획적으로 살아라. 외출을 해라. 독서와 운동을 해라. 

휴일을 완벽하게 보내는 방법을 묻자 챗GPT가 내놓은 답변이다. 최첨단 인공지능(AI)이 기발한 솔루션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순간에 꺾였다. 부모님의 입에서 나올 법한 잔소리가 유려한 문체로 쏟아지자 심사가 뒤틀렸다. 

좋지 않은 첫인상을 차치하고 챗GPT 표 ‘완벽한 휴일’ 일과를 24일 하루동안 따라봤다. 반신반의로 시작했지만, 뜻밖의 이득이 적지 않았다. 언짢은 신기술인 줄 알았던 챗GPT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명쾌한 개인비서가 되어 있었다.

챗GPT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있다.   챗GPT 갈무리

진부한 바른생활… 서울에 ‘허브아일랜드’?

챗GPT는 교과서적인 바른생활을 권했다. ‘휴일을 완벽하게 보내는 방법을 알려줘’라는 요청에 가장 먼저 △계획을 세워서 하루를 효율적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어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장소를 방문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했다. 건강을 걱정해주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운동을 하라고 했다. △휴대전화와 디지털기기에서 벗어나 책을 읽으라는 조언도 했다.

거짓말을 유창하게 하는 모습도 포착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방문할 색다른 장소를 묻자, 챗GPT는 서울 남산에 있는 허브 정원 ‘허브아일랜드’를 추천했다. 다양한 허브와 약초들이 자라나는 곳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 휴식처로 인기가 많다는 추가 설명도 덧붙였다. 남산 밑 동네에서 5년을 자취했지만 남산에 허브아일랜드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경기도 포천의 허브아일랜드가 남산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은 찾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읽을 책을 묻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추천했다. 챗GPT는 ‘소년이 온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으로, 감성적이면서도 생생한 서술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감상평도 이야기했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라도 광주다.  

진부한 거짓말쟁이에게 휴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문답을 거듭 주고받으며 구체적인 할 일을 정했다. 휴일에 방문할 색다른 장소는 △청계천으로 정했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할 일은 △‘소년이 온다’ 읽기와 산책이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먹을 점심 메뉴는 △채소와 과일이며, 운동은 △걷기와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을 추천받았다. 

서울 용산구 청파도서관 내부 모습. 디지털 자료를 포함해 3만부 이상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생각보다 엄청난 공공도서관 인프라… 나만 몰랐다

시작하자마자 뜻밖의 수확을 봤다. 까맣게 몰랐던 공공도서관 인프라를 알게 됐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도서관을 이용했고, 졸업 이후로는 새 책을 사서 읽었다. ‘소년이 온다’를 손에 넣기 위해 집 주변 도서관을 검색했다. 서울 용산구에는 무려 17개의 공공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도서관이 4개나 존재했다. 인터넷 통합홈페이지에서 각 도서관이 보유한 책과 대출 가능 여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공시설은 세련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깨졌다. 가장 가까운 청파도서관에 방문했더니, 건물 1층 전체가 열람실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고, 방문자도 많았다. 열람실 50석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책 대출 방법을 문의하자 사서 선생님은 ‘책이음 카드’를 발급해 줬다.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과 같은 카드다. 이 좋은 서비스를 두고 그동안 책값을 지출하고 카페를 전전하며 공부했다.

챗GPT의 추천에 따라 처음으로 샐러드를 구입해 먹었다. 가격은 9800원이다.  사진=한성주 기자

싱싱한 채소와 청계천, 막상 마주하니 새로웠다

가공되지 않은 채소를 오랜만에 먹었다. 챗GPT의 추천에 따라 싱싱한 채소와 과일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샐러드를 구입했다. 파릇한 식물을 화단 아닌 식탁에서 보는 것이 어색했다. 평소 마트에 가면 채소와 과일이 진열된 매대는 건너뛰었다. 같은 값이면 저렴하고 맛도 좋은 인스턴트식품을 사는 편이었다. 가열 조리되지 않은 채소는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올 때나 맛볼 수 있었다. 챗GPT의 조언이 없었다면, 샐러드를 파는 가게에 들어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청계천 물가에 가까이 가봤다. 사진을 촬영 중인 외국인 관광객 무리가 많았다.   사진=한성주 기자

몰랐던 청계천의 모습도 알게 됐다. 청계천변에 내려간 건 처음이었다.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지나다니며 청계천을 멀리서만 봤을 뿐, 물가 가까이 다가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 잠시 헤매기도 했다. 물가에 가까이 가자, 서울 도심에서 듣기 힘든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자연 친화적 물 비린내도 맡을 수 있었다. 천변 산책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간만의 운동, 게으름을 자각했다

하루 1만 보를 걷지 않는 날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마트워치의 건강 기록 페이지를 오랜만에 열어봤다. 이날은 챗GPT의 추천에 따라 1시간가량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하며 1만보를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주중 평일 대부분은 하루 7000~8000보를 걸었다. 출근과 퇴근을 포함해 일상적인 활동만으로 1만보가 채워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주로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고, 운동을 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1만보는 의외로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챗GPT의 추천에 따라 1시간 가량 공원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유산소운동을 했다. 총 1만2248보를 움직였다.   사진=한성주 기자 

위협적인 기술? 유용한 도구?… 사람에 달렸다

챗GPT 표 휴일 일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전까지 계획은 처리해야 할 과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쌓였을 때나 세우는 것이었다. 놀 계획을 세운 건 처음이었다. 독서, 채소와 과일 먹기, 청계천 방문 등도 글자만 익숙한 활동이었다.

결정장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경험도 신선했다. 챗GPT는 한가지 질문에도 여러 선택지를 나열한 답변을 제시했다. 가령 휴일에 읽을 책으로 ‘소년이 온다’ 이외에도 ‘죽음에 관하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984’, ‘행복한 여행’ 등 총 5개 작품을 추천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만 하면 된다.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과 지력을 아낄 수 있다.

종종 나오는 거짓말을 거르기 위해 적당한 긴장감도 유지된다. 챗GPT는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데이터베이스 삼아 적합한 답변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다수가 수긍할만한 무난한 이야기를 하면서 설득력을 높인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섞여 있다가 답변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친절하고 유창한 말투에 방심해선 안 된다.

챗GPT가 일상생활은 물론, 사고방식도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처럼 말하는 AI를 두고 당장은 ‘소름 끼친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유용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 설명이다. 조성배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세상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 극명하게 바뀌었다”며 “챗GPT와 같은 기술이 일상으로 들어오면, 우리가 활동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리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과제로 꼽혔다. 조 교수는 “챗GPT는 수식과 통계로 개발된 소프트웨어 기술”이라며 “사람과 같은 자의식을 갖고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사람들이 AI의 답변을 신뢰하면서 개인 비서처럼 활용하게 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AI는 사실이 아닌 정보도 얼마든지 친절한 말투로 설득하듯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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