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남이’로 꿈 이룬 박성광 “혹평도 감사하죠” [쿠키인터뷰]

‘웅남이’로 꿈 이룬 박성광 “혹평도 감사하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23 19:05:35
영화 ‘웅남이’로 감독 데뷔를 마친 코미디언 박성광.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CJ CGV

코미디언 박성광은 지난해 두 가지 자아로 살았다. KBS2 ‘개승자’에서 어수룩한 연기를 하다가도 다음날이면 배우와 스태프 수십 명 앞에서 “오케이, 액션!”을 외쳤다. 배우들 역시 희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감독 모습이 퍽 이질적이었단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고민하며 달린 지 반년. 인고의 시간 끝에 박성광은 첫 상업 장편 영화 ‘웅남이’로 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2007년 코미디언 데뷔 후 16년 만이다. 

박성광의 영화사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출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극장에서 본 ‘우뢰매’와 ‘슈퍼 홍길동’을 보고 배우 겸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대학 입시에서 연극영화과를 줄줄이 낙방하자 그는 연출자로 방향을 틀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연출 전공을 거쳐 영화예술학도로 졸업했지만, 당시 동문이던 코미디언 유세윤·장동민·유상무·박영진·윤성호와 코미디 동아리를 결성하며 연출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래도 마음속에 늘 영화를 꿈꿨어요.” 지난 16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성광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연출에 입문한 과정을 풀어놨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던 중에 우연히 초단편 영화제를 접했어요. 주변 도움을 받아 영화 ‘7급 공무원’을 만든 신태라 감독님의 조언을 얻어 처음으로 완성작을 선보였죠.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제가 했어요.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 40~50명이 웃으며 작품을 관람하더라고요. 코미디 무대와는 다른 희열을 느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진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겠다고요.”

‘웅남이’ 촬영 현장.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CJ CGV

연출공부에 매진한 박성광은 6년 만에 단편 영화 ‘욕’과 ‘슬프지 않아서 슬픈’을 선보였다. 그가 만든 첫 단편에는 ‘코미디언이 찍은 것 같다’는 평이 따라붙었다. 코미디 장르로 시작한 그의 영화세계는, 편견을 깨겠다는 일념 하에 확장을 거듭했다. 휴머니즘·다큐멘터리·누아르·스릴러·로맨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하지만 번번이 투자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투자자들은 감독이 코미디언 박성광이라는 말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장편 영화 데뷔를 위해 다시 코미디를 택했다.

“코미디가 자신 있다면 그건 자만이죠. 처음이니까 가장 잘아는 걸 한 거예요. 사실 코미디는 연출 경험을 더 쌓고 도전하려 했어요. 잘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데뷔가 무산되는 현실 앞에선 어쩔 수 없더라고요. 코미디 영화를 찍으며 주관이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모두가 좋아하는 코미디는 다르니까요. ‘웅남이’ 역시 투자자, 제작자, 연출부 의견을 굉장히 많이 반영했어요. 다음 영화는 뚝심 있게 제 코미디를 밀어붙이고 싶어요.”

‘웅남이’는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 웅남(박성웅)이 비밀 임무를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액션극이다.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 박성웅을 필두로 이이경, 염혜란, 최민수, 오달수, 윤제문 등이 출연했다. 박성광의 지인부터 제작사 대표 인맥까지 동원해 꿈의 라인업을 완성했다. 박성웅과 이이경은 시나리오 검수에도 함께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류준열, 배유람 등 절친한 지인과 아내 이솔이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선배 코미디언 김준호는 흔쾌히 특별출연을 약속했다. 이경규, 정형돈도 장난 섞인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의 도움 속에 ‘웅남이’ 프로젝트는 점점 형체를 잡아갔다.

‘웅남이’ 언론배급시사회 현장. 웅남이문화산업전문회사, CJ CGV

“박성웅 형님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자마자 연락이 두절됐어요. 이 영화는 이제 끝났구나 싶었죠. 그런데 나흘 만에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캐스팅 보드에 자기 이름을 넣으라는 거예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나웅남, 이정학 캐릭터는 형님의 의견을 정말 많이 반영했어요. 수정만 한 달가량 걸렸을 정도예요. 최민수, 염혜란 선배가 낸 의견도 대본에 넣었죠. 아내가 직접 쓴 장면도 있어요. (이)이경이는 무조건 출연한다며 힘을 보태줬죠. 저 역시도 박성웅 형님과 이이경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소규모 독립영화만 연출하던 박성광에게 ‘웅남이’는 잊을 수 없는 도전이다. 작품을 수차례 검열하며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때로는 후회됐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연출하며 맛본 통쾌함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각색하며 상상하던 캐릭터가 눈앞에서 뛰어오는 것을 보며 생전 처음 느낀 짜릿함을 맛봤단다.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님처럼 누군가의 인생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영화든 코미디든 즐거움을 드릴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영화를 왜 하냐고요? 코미디를 하는 이유와 같아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거든요. 꼭 웃겨야 즐거운 건 아니잖아요. 웃고 울고 공감하다 보면 저절로 즐거워지죠. 이 업계에서 지금껏 일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는 지금도 코미디언이고, 죽을 때까지 코미디언이고 싶어요. 연출자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예요. 그러니까 영화에 안 좋은 평가가 나와도 다 받아들일 거예요. 이제 시작인데 부족한 게 당연하죠. 지금도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대략적인 원고)를 써둔 작품이 몇 개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계속 두드려보겠습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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