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장항준 “살면서 재밌는 건 영화뿐” [쿠키인터뷰]

‘리바운드’ 장항준 “살면서 재밌는 건 영화뿐”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4-06 06:00:02
장항준 감독. 미디어랩시소

뜻밖이었다. 당찬 목소리로 자신을 “신이 내린 꿀 팔자, 윤종신이 임보(임시보호)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눈물 자국 없는 몰티즈”라고 소개하던 그는 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어쩌면 유작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앞날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게 영화감독 일이어서다. 호기롭게 작품을 발표한 것도 한때, 더 이상 신작을 내지 못해 사라진 동료 감독들만 여럿이다. 그 역시도 전작 ‘기억의 밤’ 이후로 우여곡절을 거쳐 6년 만에 신작 ‘리바운드’를 선보였다. 지난 3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이 같이 말하곤 “‘리바운드’를 만든 과정 자체가 리바운드”라며 웃었다.

많은 사연을 품은 작품이다. 2012년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 실화를 그린 ‘리바운드’는 숱한 무산 위기를 겪어야 했다. 대회가 열린 당시 연말 착수한 ‘리바운드’ 프로젝트는 11년 동안 표류해왔다. 2018년 장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오디션을 진행한 이후에도 투자가 엎어져 제작을 중단해야 했다. 극 중 농구부만큼이나 장 감독 역시 포기를 모르고 달려들었다. 이토록 작품에 매달린 이유는 간단했다. 오랜만에 피 끓는 기분을 느껴서다. 그는 아내이자 인기 작가 김은희의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를 견고히 갈고닦았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세상이 원치 않을지라도 피를 끓게 하는 이야기면 끝까지 매달려 왔어요. 반대로, 투자를 받더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만들 마음이 전혀 안 생겨요. ‘리바운드’는 전자였어요. 김은희 작가도 시나리오를 보더니 ‘이건 해야 한다’며 응원하더라고요.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도 ‘아빠가 연출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꼭 만들면 좋겠다’며 힘을 보태줬어요. 김은희 작가가 원안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각색했어요. 역시나 명성대로 아주 잘 썼더군요. 하하. 만족스러웠습니다.”

폐부 위기에 놓였던, 교체 선수조차 없는 최약체 팀이 전국대회에서 준우승하는 이야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실화를 두고 장 감독은 긴 고민을 이어갔다. “실화가 아니라면 클리셰 범벅이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몰라요. 실화가 강렬한 만큼 이야기엔 힘을 빼려 했죠.” 장 감독은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연출하는 것을 택했다. 팀원 간 관계성을 부각기보다는, 이들이 역경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기존 스포츠 영화가 완성형 스승의 불량 학생 교화기를 다루는 것과 달리, ‘리바운드’는 스승과 학생이 함께 성장한다. 장 감독은 한 사람의 영웅을 만드는 게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진솔한 분위기에 특유의 유쾌한 유머로 쉴 곳을 군데군데 마련했다.

“꿈을 잃어버린 스물다섯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여섯 소년의 여행기라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이들의 성장이었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강 코치 서사도 상당 부분 들어냈어요. 코미디에는 큰 공을 들였어요. 코미디는 의도가 읽히는 순간 힘을 잃거든요. 웃기려 하는 걸 절대 티내지 않으려 했어요. 배우들에게 개별적으로 애드리브를 주문했죠. 안재홍, 이준혁이 차진 활약을 보여줬어요. 앵글 속 안재홍을 볼 때면 학교를 졸업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 코치가 된 정봉이(tvN ‘응답하라 1988’)가 떠오르곤 했어요. 워낙 독보적인 분위기가 있는 배우잖아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재미있더라고요.”

영화 ‘리바운드’ 현장 스틸. (주)바른손이앤에이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재개한 장 감독은 하루하루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첫 연출작인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인지도를 키우고, SBS 드라마 ‘사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당시를 두고 “너무 일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기”라고 평한 장 감독은 “지금은 즐기고 있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그는 이 일이 좋단다. “이제 장항준 시대가 오나요?” 명랑하게 말하는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장 감독은 후련한 목소리로 “예능보다 좋은 건 역시나 영화”라고 했다.

“‘리바운드’를 촬영하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운동선수는 부상을 입으면 하루아침에 선수 생명이 끝날 수 있잖아요. 영화감독도 비슷한 처지예요. 20~30년을 해온 베테랑이어도, 슬럼프에 빠지면 경력 같은 건 다 소용없거든요. 시간이 지나야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깨닫는 거죠. 그래서 매 작품을 유작이라 생각해요. 저는 살면서 재미있는 게 영화뿐이에요. 창작의 고통보다 즐거움이 앞서는 것도 결국 영화더라고요. 지금은 본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역시 영화가 좋아요. 그래서 ‘리바운드’가 유작은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요. 60대까진 현역이고 싶거든요. 너무 꿈 같나요? 하하.”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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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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