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수신료… KBS “변화보다 개선 필요” [들어봤더니]

기로에 선 수신료… KBS “변화보다 개선 필요” [들어봤더니]

기사승인 2023-04-13 17:15:39
KBS 사옥 전경. KBS

KBS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수신료 논란에 입을 열었다. 대통령실이 지난 3월9일부터 한 달 동안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한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건’과 관련한 대처다. 해당 안건이 96.5% 찬성으로 결론 나자 KBS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언론 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온라인 조사라는 점과 수신료 제도가 아닌 수신료 징수방식만을 문제 삼는 게 공영방송 흔들기라는 비판이다. 앞서 한 차례 입장을 냈던 KBS는 13일 서울 여의도동 KBS 아트홀에서 간담회를 열고 수신료 통합징수의 당위성과 관련 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장에는 최선욱 KBS 전략기획실장과 오성일 KBS 수신료국장이 참석했다.

“수신료 제도에 납부 선택권? 위법으로 이어질 수도”

수신료 논쟁은 매번 되풀이 돼왔다. 일부 시민단체가 2006년, 2015년 헌법재판소와 행정법원에 각각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원은 KBS 손을 들어줬다. 이중징수가 아니며, KBS 방송 내용이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법에서 징수 정당성과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인정한 사례다. 이번 논란은 윤석열 정부가 수신료 징수 방법을 문제 삼으며 발화했다. 현재 TV 수신료는 방송법 제64조에 따라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사람에게 월 2500원씩 전기요금에 포함해 일률 부과 및 징수하고 있다.

정부는 TV 수신료를 강제 징수하는 게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고 TV 시청 채널이 유튜브·IPTV·OTT 등으로 확대한 최근 추세와도 맞지 않다고 봤다. 일부 매체는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말을 빌려 “조만간 분리 징수와 관련한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공식 발표가 이뤄지진 않은 상태다. 이에 관해 오 국장은 “수상기 소지자는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법령이 있는 만큼, 수신료 제도 존치 상황에서 납부 선택권은 공존할 수 없다”면서 “의도와 달리 위법 행위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수신료가 특별부담금인 점을 들며 “선택적으로 특별부담금을 납부하면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수신료를 포함한 특별부담금 항목은 약 90가지다. 최 실장은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공익사업 등에도 폭넓게 쓰인다”면서 “대통령실이 관련 내용을 설명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최선욱 KBS 전략기획실장(왼쪽)과 오성일 KBS 수신료국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KBS

“한전 통합징수, 국내 실정 맞게 최적화한 것”

KBS는 통합징수가 분리징수로 변화할 경우 제반 비용이 늘어나는 점을 우려했다. KBS에 따르면, 유럽방송연맹에 가입한 56개국 중 수신료를 유지하는 나라는 23곳이다. 이들 모두 수신료를 통합징수하고 있다. 일본은 전력회사가 7개로 나눠져 통합징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최 실장은 “나라마다 산업구조와 사회효용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징수 방법을 정하고 있다”면서 “비용을 아낄수록 그만큼을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효용성을 고려해 한국전력(한전)에서 통합징수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BS는 수신료로 공영방송 기능을 수행해 왔다. KBS 운영비용에서 수신료 비중은 45.5%(2021년 기준)다. 수신료를 현행과 달리 분리징수하면 새로운 비용이 발생한다. KBS는 “동일 재원을 쪼개면 콘텐츠 질과 공익사업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와 공공외교의 주요 자원인 대외방송과 국제방송, 장애인방송, 클래식과 같은 특정 장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최 실장은 “일반 시청자가 체감하긴 어렵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부분을 KBS가 도맡아 왔다”면서 “KBS가 감당하던 공익사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오 국장 역시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면 관련 비용이 2배 이상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한전은 그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면서 “수신료 수입이 위협받을 경우 공영방송 사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전에 위탁 중인 현재 징수 제도의 효율성과 공평성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뛰어난 수준”이라면서 “효율성 측면에서 현재 위탁징수 방식은 적정하다”고 강조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KBS 아트홀에서 열린 수신료 간담회 현장. KBS

“KBS에 부정적 여론, 풀어가야 할 숙제”

대통령실이 진행한 수신료 설문 결과를 두고 KBS에 부정적 여론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관해 KBS는 “과학적으로 진행한 여론 조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KBS가 외부기관에 의뢰한 미디어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KBS에 대한 국민 인식은 68%가 긍정적, 32%가 부정적이었다. 최 실장은 “보도 공정성나 지역방송, 디지털 서비스 등 KBS에 불만족할 수 있지만, 이를 분리징수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면서 “정부와 KBS의 사회적 효용을 높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전 세계에서 자국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는지, 수신료 제도가 여전히 유효한지 논의가 많다. 오 국장은 “영국에서도 관련 설문에서 응답자 63%가 수신료 폐지에 찬성했으나, 정부가 물가상승률에 따라 수신료를 인상하고 2028년까지 논의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회 합의를 도출하고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 재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면서 “KBS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수신료는 당위성을 가졌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다만 보다 더 큰 틀에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답보 상태 빠진 미디어 정책… 큰 그림 그려야”

KBS가 강조한 건 미디어 산업 전반의 개선이다. 최 실장은 지난달 영국 정부가 발표한 미디어법을 예로 들며 “국내 정책은 현재 답보 상태”라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자국 산업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인식 하에 글로벌 미디어 사이 규제와 균형성을 다룬 연구와 정책을 수립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가 새로 제정한 미디어법은 영국 내 방송사와 ·넷플릭스·디즈니+·아마존 프라임 등 글로벌 스트리밍 대기업 사이 경쟁의 장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걸 골자로 한다. 이에 더해 콘텐츠 소비 습관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과거 법률(2003년 통신법·1990년 방송법)을 현대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 실장은 우리나라 법률이 1987년에 제정된 걸 지적하며 “수신료 분리 징수 같은 논의보다 미디어 산업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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