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으로 입소문…‘킬링 로맨스’는 소생 중

‘드립’으로 입소문…‘킬링 로맨스’는 소생 중

기사승인 2023-04-25 06:00:15
영화 ‘킬링 로맨스’ 속 한 장면. 배우 오정세가 이 장면에서 깜짝 출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한 번도 난 너를/ 잊어본 적 없어/ 오직 그대만을/ 생각했는걸” 그룹 H.O.T.가 26년 전 발표한 노래 ‘행복’이 올해 새로운 수능 금지곡으로 떠올랐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감독 이원석) 때문이다. 섬나라 재벌 조나단 나(이선균)가 한때 톱스타였던 아내 황여래(이하늬)를 가스라이팅(심리지배)하며 부르는 이 노래는 영화의 엉뚱한 상상력을 압축해 보여주는 매개체다. 누적 관객 수는 아직 14만명, 하지만 온라인에서 각종 ‘짤방’을 생성해내는 ‘킬링 로맨스’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

24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주말(21~23일) ‘킬링 로맨스’를 본 관객은 3만9276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박스오피스 순위로는 영화 ‘존 윅 4’(감독 채드 스타헬스키·31만6000여명),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16만여명), ‘리바운드’(감독 장항준·7만1000여명) 등에 뒤진 5위다. 하지만 온라인 화제성은 경쟁작 부럽지 않다. ‘내 멋대로 싱어롱’이란 부제가 붙은 GV(관객과의 대화) 등 홍보 행사가 계속돼서다. “(‘킬링 로맨스’가) 유작이 될 수 있으니 조문하는 심정으로 극장에 와 달라”는 주연배우 이선균의 호소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관객들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아내를 지배하려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죽이려는 아내, 그리고 이웃집 4수생 소년이 부대끼는 ‘킬링 로맨스’는 한 마디로 골 때린다. 영화·TV·책에 대한 이용자 평점을 제공하는 왓챠피디아에선 “서래 말고 여래의 존 나(주인공 조나단 나의 약칭) 헤어질 결심”(닉네임 김진*), “한국에서 태어나 5수를 한 웨스 앤더슨이 수능 전날 꾼 개꿈을 영화로 만든 것 같다”(닉네임 Watcha*****) 같은 ‘드립’이 줄을 잇는다. 웨스 앤더스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감독이다.

‘킬링 로맨스’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손익분기점(누적 관객 160만)까지 갈 길은 멀지만, 업계는 일단 이런 입소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단 관객 사이에서 왕성하게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뒷심 발휘를 기대할 만하다는 평가다.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는 관객 눈에 띄어야 한다. 그 점에서 ‘킬링 로맨스’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언급돼 반갑다”면서 “골든에그지수(CGV가 운영하는 영화 평점 서비스)가 이례적으로 높아지는 등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 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킬링 로맨스’ 측은 골든에그지수 상승을 기념해 최근 무대인사에서 관객에게 맥반석 달걀을 선물했다.

‘킬링 로맨스’를 둘러싼 독특한 일화도 영화의 화제성에 불을 붙이는 요소다. 배우 오정세는 23일 경기 모처에서 진행된 ‘킬링 로맨스’ 무대인사에 깜짝 등장했다. 셔츠 안에 ‘극열지옥 불가마’라고 적힌 노란 티셔츠를 입은 차림이었다. 오정세는 이원석 감독의 첫 상업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주연한 인연으로 ‘킬링 로맨스’에도 특별 출연했다.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 극열지옥 불가마 사장이다. “지금은 여러분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이는데, (영화를 다 본) 2시간 이후에는 조금….” 오정세가 이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리자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 감독과 이선균이 영화 홍보차 출연한 유튜브 방송도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제작사 이창 대표인 김성훈 감독은 “열성적으로 ‘킬링 로맨스’를 지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다양성을 만들려는 이 영화 기획 목표가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시도가 되는 듯해 행복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김 감독은 이 감독에게 ‘킬링 로맨스’ 연출을 제안하며 ‘네 색깔을 입혀봐라’고 힘을 실은 장본인이다. 그는 “이 작품이 관객에겐 처음 접하는 경험이겠으나 그렇기에 해볼 만한 경험이기를, 창작자들에겐 도전해볼 영역의 장르와 폭이 넓어질 신호이길 바란다”면서 “‘킬링 로맨스’가 뛰어나고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이후 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시작이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