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소금 1㎏에 3000원대! 빨리 클릭, 클릭!”
주부들이 모인 단톡방은 며칠째 소금 이슈로 시끄럽다.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발표 이후 나타난 소금 사재기 현상이 ‘품절 대란’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오프라인 매장에선 이미 소금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21일 찾은 경기 광명시 한 대형마트 매대엔 소금이 거의 비어 있었다. 동네 슈퍼도 소금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한다. 경기 광명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30년 가까이 영업하면서 소금 품귀를 겪긴 처음이라고 말했다. 보름 전만 해도 3만원도 안 됐던 20kg 소금 몸값이 지금은 2배 가까이 뛰었다. 김씨는 “지금 소금이 없어서 도매상도 난감하다더라”라며 “소금을 구할 수 없다고 하니 찾던 손님도 그냥 돌아간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소금 몸값은 더 높이 뛰었다. 지난 7~13일 온라인 쇼핑몰 다나와를 통해 판매된 소금 거래액은 직전 기간 대비 817% 급등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굵은 소금(5㎏) 소매가격은 평균 1만4330원이었다. 한 달 전(1만2500원)보다 14.6%, 1년 전(1만1191원)보다 28.0% 각각 상승했다. 지난 3년간 평균값을 산출한 평년 가격(7940원)과 비교하면 80.5%나 뛰어올랐다.
현장에선 부르는 게 값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몰에서 3000원대에 구매할 수 있었던 청정원 천일염 가는 소금(500g)은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1만6000원대에 판매 중이다. 같은 상품이어도 개인 판매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소금에서 시작된 불안 심리는 김, 젓갈, 미역까지 이어졌다.
장바구니에 담았던 소금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젠 ‘하루라도 더 저렴할 때 사야 한다’는 분위기가 됐다. 일반 수산물과 달리 소금은 필수로 먹어야 하는 조미료인 만큼 살 수 있을 때 미리 사둔다는 계획이다. 밥상을 책임지는 주부들은 건강과 안전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도 단체 메시지방에 모인 주부들은 그나마 소금값이 저렴한 쇼핑몰을 찾아 링크를 공유했다. 전날 1㎏ 소금 5봉을 구매했다는 박씨는 “소금 구하기가 어려우니 살 수 있을 때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육아카페와 지역 카페에서도 한숨 소리만 나온다. 한 소비자는 “마트에서 1인 1개만 살 수 있어서 가족이 전부 출동해 사 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간단히 할 수 있는 겉절이나 오이무침도 소금이 귀해서 못 해 먹겠다” “다음달에 소금이 나온다니 그때까지 버텨보자” 등 반응이 쏟아졌다.
소금을 구하는 소비자들이 중고 매매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소금을 고가에 되파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날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2010년산 신안 천일염 소금 30㎏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가격은 무려 150만원. 또 다른 판매자는 8년 묵은 신안 천일염 소금 20㎏을 선착순으로 판매한다며 경쟁을 붙이기도 했다.
식당이나 일부 주부들은 소금 사재기로 당장 소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지 못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가격에 사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부 이모(58)씨는 “당장 요리할 때 써야 할 소금이 다 떨어졌는데 마트엔 없고, 인터넷 쇼핑몰은 너무 비싸다”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부 임모(39)씨도 “소금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라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마침 소금이 떨어져 마트에 갔더니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당황했다”라며 “온라인에서 소금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존 가격보다 2~3배 올랐더라. 사재기하는 사람들도, 이때다 싶어 가격을 올린 판매자들도 너무 한 것 같다”고 했다. ‘고물가·고금리로도 힘든데 소금 가격까지 말썽’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해양수산부는 6~7월 소금 생산량이 회복되면 공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10t에 이르는 햇소금이 본격 출하한다. 정부는 햇소금이 출하하는 만큼 공급과 가격이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또 일본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더라도 소금이 오염된다는 이야기는 괴담성 정보라며 우리 측 해역은 안전할 것이란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전날 입장문을 통해 “(오염수 방류가) 우리 바다와 수산물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적 영향력 과시를 위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면서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우리 수산업계 및 관련 요식업계의 피해를 가중하는 자해행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소금 사재기는 계속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는데도 안심하지 못한다. 다음달 풀릴 소금 물량만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과학적 정보를 근거로 국민의 불안을 막는 것, 공포 심리를 이용해 돈벌이하는 악덕 업체에 철퇴를 내리는 것. 말보다 더 중요한,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대책 아닐까.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