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와 형사의 영혼이 바뀌는 보디 체인지. 배우 오대환은 독특한 이야기에 먼저 구미가 당겼다. 그리고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선과 악을 오가는 배역에도 미움받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악역으로 명성을 떨친 선배 배우 박성웅에게도 한 마디 했단다. “형, 나는 악역을 맡아도 예쁨 받아.”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오대환은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며 호방하게 웃었다.
김재훈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악마들’은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서 기적이라 불렸다. 제작 환경이 열악해서다. 총제작비가 1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저예산 영화다. 촬영은 28회 차로 마무리했다. “완성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린 이유다. 영화 완성을 자축하는 자리에는 오대환과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을 함께한 정지인 감독부터 넷플릭스 ‘사냥개들’의 홍종찬 감독 등 여러 연출자들이 찾았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고생했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오대환은 “구르고 싸우는 액션은 어렵지 않았다”면서 “연기를 괜찮게 해냈는지가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대환이 극 중 맡은 역할은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 최재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차진혁(장동윤)을 잡으려 애쓰다 실종된 그는 살인마와 몸이 바뀐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오대환은 최재환에 더해 차진혁의 영혼이 깃든 최재환까지 연기해야 했다. 건조한 눈빛에 살기가 깃드는 장면이 일품이다. 김 감독, 상대역인 장동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만든 결과물이다. 방향성을 제시한 건 연기 경력이 가장 많은 오대환이다. 연기를 연구할 시간마저 사치였던 현장. 오대환은 “연기 주체가 나인만큼 나로서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소리나 말투는 편한 대로 하되 동일한 손동작을 고안하자는 그의 의견에 장동윤과 감독도 동의했다. 그는 “전쟁 같은 현장에서 서로 자극받으며 만든 작품”이라면서 “드라마보다도 힘든 영화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촬영 기간 동안 (장)동윤이와 저는 다른 작품과 촬영 일정이 겹친 상태였어요. 둘 다 잠이 부족해서 이동하는 틈틈이 쪽잠을 자며 생활했어요. 그래도 촬영에만 들어가면 눈이 반짝 떠졌어요. 동윤이는 제가 연기하는 걸 봐도 주눅 들긴커녕 오히려 힘을 받더라고요. 둘 다 서로의 기에 지지 않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연기에 선후배는 없잖아요. 시너지가 날 수 있던 현장이라 좋았어요.”
치열하게 찍은 나날이었다. 제작진과 배우에게는 대본보다 더 나은 결괏값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오대환은 “액션 스릴러 장르를 28회 차에 맞춰 촬영한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모두가 철저하게 임한 덕에 가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독은 계산적으로 콘티(촬영용 연출 대본) 작업을 마쳐 촬영할 분량을 정확히 추렸다. 배우들은 NG 없이 연기하기 위해 각고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모두가 서로를 믿었고, 서로에게 의지한 대로 결과물이 나와” 완성한 게 지금의 ‘악마들’이다. 오대환에게 ‘악마들’이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악마들’을 비롯해 악역을 여럿 맡은 그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유쾌한 무사로 활약했다. MBC에브리원 ‘시골경찰’ 시리즈와 MBC ‘악카펠라’ 등 예능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그를 달리게 하는 힘은 다복한 가정이다. 자신을 “친구 같은 아빠”로 표현한 그는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눈을 반짝였다. 극단 소속 시절, 그는 한 장면을 위해 며칠을 매달릴 정도로 연기밖에 모르던 배우였다. 연극은 늘 그의 꿈이었다. 그는 “배는 곯아도 가장 재미있게 연기하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결혼 후 오대환은 가정에 전념하는 아버지가 됐다. 매체에서 연기를 시작하며 주목받자 버는 돈은 많아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린 기분에 허덕였다. 배우로서의 혼과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자아가 부딪힐 때도 있었다. 그는 포기에서 정답을 찾았다. “부는 얻어도 삶의 질은 떨어진 느낌”이라고 말을 잇던 그는 “연기도 중요하지만 내겐 가정이 더 소중했다. 양쪽을 다 지키기로 한 결과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했다. 현재 그는 영화·드라마 현장과 연극 무대를 오가고 있다. 바쁜 삶 속에도 연극을 빼놓지 않는 건 “고향에 베풀러 가기 위해”서다. 인지도를 기반으로 관객몰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오대환은 “배우로서 더 잘될수록 연극쟁이들에게 기여하고 싶다”면서 “이런 식으로 꿈을 지켜가는 것도 멋있지 않냐”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