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은 ‘밀수’ [쿡리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은 ‘밀수’ [쿡리뷰]

기사승인 2023-07-20 19:40:03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스틸컷. NEW 

때는 바야흐로 세상이 들썩이던 1970년대 중반. 소도시 군천에 사는 해녀 엄진숙(염정아)과 조춘자(김혜수)에겐 고민이 생겼다. 바다 근처에 세워진 화학공장 때문에 어패류가 죄다 죽어서다. 물질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현실에 둘은 골머리를 썩는다. 우연한 기회로 불법 밀수에 뛰어들며 인생역전을 노렸지만 기쁨도 잠시, 세관 단속에 적발되며 진숙과 춘자는 운명의 갈림길에 선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는 격동의 시절인 1970년대 가상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자매처럼 지내던 진숙과 춘자는 온갖 감정으로 서로를 치받는다. 일련의 사건으로 춘자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믿는 진숙은 앙금이 가득하다. 반면 춘자는 “넌 나를 모르냐”며 이를 드러낸다. 둘 사이 깊어진 감정의 골이 전개의 주요 축을 담당한다. 여기에 장도리(박정민)와 고마담(고민시) 그리고 밀수 바닥을 주름잡은 은막의 실세 권상사(조인성)가 살을 붙인다.

배우들의 조화로운 호연은 몰입을 이끄는 일등공신이다. 여러 등장인물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얽히는 멀티캐스팅 작품이지만 산만하지 않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중심을 꽉 잡아서다. 두 배우는 노련하게 극을 밀고 당긴다. 연기 스타일이 전혀 다른 이들 배우가 한 프레임에 잡히자 새로운 재미가 생겨난다. 염정아가 자연스럽게 진숙의 감정을 눌러 담아 표현한다면, 김혜수는 생존을 위해 발광하는 춘자를 힘 있게 그려낸다. 같은 영화여도 두 가지 분위기가 어우러진 인상을 받는다.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서도 극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장도리가 스크린에 잡히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새 나온다. 고민시는 선배들의 존재감에 지지 않으려 애쓴다. 귀엽고 능청맞게 연기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박정민과 고민시가 웃을 거리를 준다면, 조인성은 등장만으로도 극을 장악한다. 눈빛에 살기, 위압감, 애절함 등 여러 감정을 담아내며 극에 다양한 정서를 덧입힌다.

‘밀수’(감독 류승완) 스틸컷. NEW 

류승완 감독은 ‘밀수’로 액션의 신기원을 연다. 극 말미 펼쳐지는 수중액션이 백미다.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물속에서 해녀들이 펼치는 유연한 액션은 눈 뗄 수 없는 볼거리다.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타격 액션 역시 담겼다. 조인성의 다대일 격투 신이 대표적이다. 부감 숏(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으로 담은 치열한 맨몸 싸움과 함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이외에도 배우들의 감정을 극대화해 연출한 장면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숨은 공신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장기하다. ‘밀수’에서 음악은 극을 이해하고 몰입하게 돕는 주요 요소다. ‘연안부두’, ‘님아’, ‘앵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무인도’ 등 인기곡들의 익숙한 과거 멜로디가 이야기와 어우러질 때마다 ‘밀수’가 구현한 그때 그 시절에 더욱 빠져든다. 류승완 감독은 각본 작업부터 1970~1980년대 유행가를 선별해 그와 어울리는 장면을 구상했다. 장기하는 이 같은 곡들을 알맞게 편집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트랙을 작곡하는 등 음악 연출 전반을 맡았다. 레트로 멜로디에 강점을 가진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장기를 충분히 발휘한다.

‘밀수’는 모두가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는 영화다. 배우들은 개성 강한 연기를 펼치면서도 극과 들뜨지 않고 전개를 차지게 끌고 간다. 이들 노력이 돋보이도록 세공한 류승완 감독 역시 명성에 걸맞은 연출력을 선보인다. 대형 스크린에 꼭 맞는 화려한 장면들이 여럿이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1970년대를 실감 나게 재현한 것도 볼거리다. 이야기꾼이자 액션꾼인 그는 ‘밀수’를 완성한 마지막 열쇳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은 ‘밀수’다. 오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9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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