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정아를 기대게 한 ‘밀수’의 순간들 [쿠키인터뷰]

염정아를 기대게 한 ‘밀수’의 순간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7-27 18:27:17
배우 염정아. 아티스트컴퍼니 

1남 3녀의 장녀로서 평생 따라붙는 건 책임감이었다. 데뷔 후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묵묵하게 제 몫을 해내왔다. 배우 염정아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새로이 출연한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도 그랬다. 극 중 그는 해녀들을 이끄는 리더 진숙 역을 맡았다. 다만 다른 건, 이번엔 기댈 대상이 있다는 점이다. “저를 ‘아가야’라고 부르는 현장은 처음이었다니까요!” 지난 2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이렇게 말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데뷔 32년 차 배우인 그를 아기라고 부른 건 선배 배우 김혜수. “(김)혜수 언니가 그런 말을 해주니까 좋더라고요. 많이 기댔어요.”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

염정아에게 ‘밀수’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비단 기댈 곳이 있어서가 아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다.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여중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동료들과 매번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얘기하곤 했죠. 지금도 저희끼리 만든 단체대화방이 떠들썩해요.” 좋은 호흡 속에서 그는 진숙의 단단함을 찾아갔다. 진숙은 다양한 상황을 겪는 인물이다. 가족을 잃은 날, 가족처럼 의지하던 춘자(김혜수)와도 멀어지고 해녀 식구들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다른 캐릭터가 활발히 날뛰는 반면 진숙은 진중한 태도로 무게중심을 잡고 있어야 했다. 언제나 튀는 캐릭터를 연기한 그에겐 색다른 도전이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류승완 감독과 김혜수다.

“어려운 게 많았어요.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희미하게 보여서도 안 됐거든요. 그때마다 감독님이 명확하고 시원한 답을 주셨어요. 혜수 언니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춘자·진숙 사이 관계를 두고 혜수 언니와 오랜 대화를 나눴어요. 다방에서 춘자와 진숙이 독대하며 진심을 터놓는 장면은 감독님과 저, 혜수 언니 셋이서 만든 거예요. 시나리오보다 좀 더 짧고 굵게 풀어갔죠. 그 장면을 직고 감독님이 ‘내가 이 두 배우가 연기하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제일 처음 보는 관객이라 좋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최고의 찬사였어요.”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던 그는 촬영 석 달 전부터 수중 훈련에 매진했다. 힘들었겠다는 말에 “닥치면 다 한다”, “수월하지 안 해도 해내야지 별 수 있겠냐”며 웃는 모습에서 털털함이 느껴졌다. 물속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박준면, 김재화, 박경혜, 주보비 등 해녀 역으로 함께한 배우들이 큰 힘을 줬다. “아무것도 안 보여도 언제나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든든했다”고 말을 잇던 그는 한 일화를 들려줬다. “혜수 언니와 물속에서 촬영을 대기하며 마주보던 때였어요. 저희가 셋을 세고 올라가면 촬영을 시작하는 상황이었죠. 숫자를 세면서 서로의 눈을 보는데, 세상에 언니와 저 둘만 있는 기분이더라고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수중 촬영을 이어가며 고락을 함께한 이들의 끈끈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염정아가 ‘밀수’에 출연한 이유는 간단했다. 류승완 감독 작품, 흥미로운 소재, 김혜수와의 호흡. 세 가지에 이끌린 그는 ‘밀수’가 그리는 해녀들의 치열한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1970년대 배경 역시 좋았단다. 그는 ‘앵두’, ‘연안부두’, ‘무인도’ 등 당시 인기곡이 상영관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회를 느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나오는 액션 신에서는 심장이 세차게 뛸 정도였다. 눈물이 핑 돌던 순간도 여럿이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했던 때를 떠올릴 때면 마음은 금세 촉촉해졌다.

‘밀수’ 스틸컷. NEW 

“혜수 언니는 모든 배우를 다 사랑했어요. 하루에도 칭찬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몰라요. ‘넌 이래서 좋아’, ‘넌 어쩜 그러니’라며 좋은 말만 해주시는 통에 ‘언니 칭찬 그만해!’라고 답하기도 했죠. 하하. 칭찬 덕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매번 아이스박스에 온갖 간식을 가져오셔서 저도 고마운 마음에 직접 만든 식혜를 모두에게 대접하곤 했어요. 해녀들에다가 옥분(고민시)이까지, 다들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짓궂게 장난치며 지냈어요. 가족들보다 더 자주 보다 보니 정도 흠뻑 들었어요. 지금도 그리울 정도예요.”

염정아는 ‘밀수’가 “내 작품 중 가장 흥행한 영화”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염정아에게 ‘밀수’는 새로운 동력이다. “뭘 많이 하지 않아도 표현하려는 걸 전달할 수 있는 배우”라는 김혜수의 칭찬은 또 다른 힘이 됐다. 잘했다는 말을 들으며 더 잘하려는 욕심을 냈다. 염정아는 “열심히 한 만큼 재밌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소탈하게 말했다. “사실, 관객 분들께 어떤 반응을 듣고 싶거나 하진 않아요. 오락영화니까 재밌게 봐주시기만을 바랄 뿐이죠.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맡은 바 최선을 다했으니 관객 분들도 ‘밀수’를 즐겨주세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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